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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도종가] 병자호란 의병 일으킨 선산류씨 문절공파 능호종가
미암의 저술 필사해둔 정성, 원본 소실분 메꿔
아홉번 굽는 연훈죽염 유명, 문화유산 보존 모범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전남 백아산 서쪽 곡성군 석곡면에는 11대를 이어 세거하고 있는 선산류씨 문절공파 능호종가가 있다.

부부의 시(詩) 편지 사랑, 임금에게 상소한 ‘시무10책’으로 유명한 미암 류희춘(1513~1577)이 연 문절공파는 후손들이 번성하면서 크게 두 개의 종가로 나뉘어지는데, 미암종가는 담양(본보 지난해 12월29일자 보도)에 있고, 이번에 소개하는 능호종가는 곡성에 있다.

곡성 선산류씨 능호종가 11세손 류종표씨가 창의루 앞에서 병자호란 의병활동, 미암일기 필사보존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남도일보 제공]
곡성 선산류씨 능호종가의 두 아들과 함께 곡성에 입향한 전주최씨 할머니의 음덕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모선재. [남도일보 제공]

역사상 드문 ‘병자호란 의병’을 일으킨 능호종가에는 국가 보물로 지정된 ‘미암일기’의 전사본이 보존돼 있다. 능호종가 후손들이 필사를 해놓았기에 원본에 남아있지 않은 부분의 일기의 내용까지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미암일기 원본(보물 제260호)은 미암종가 모현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시조는 고려 왕실로부터 선산에 식읍을 받았던 순성좌리공신 류보의 부친 류창이다. 지역 군사책임자였던 6세 류문호가 전라도 순천에 이거했으며, 해남에 은둔한 성리학자 9세 류계린의 아들 류희춘이 부인 송덕봉의 세거지가 있던 담양으로 장가 가면서 문절공파를 열었던 것이다.

류희춘의 증손 능호 류익청(1582~1660)은 1636년 병자호란때 남한산성에 포위된 인조를 구하기 위해 곡성 일대 23인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류익청이 부인 전주최씨와 함께 곡성 석곡에 능호종가를 열게 된다. 최씨부인은 류영석·명석 두 아들을 이끌고 석곡 능파마을로 이주했다.

종가는 입향조 부인 전주최씨의 석상 모선재를 세워 은덕을 추모하고 집안의 화합과 가통 계승에 노력하고 있다.

곡성 선산류씨 능호종가 외삼문은 정의롭다는 뜻의 의향문이라 불린다. [남도일보 제공]
곡성 선산류씨 능호종가를 지키는 소탈한 풍모의 안주인들. [남도일보 제공]

류익청의 5세손 류복삼(1728~1810)이 지금의 연반촌에 종가 터를 정했다. 류복삼이 베껴놓은 미암일기 필사본은 원본에 없는 17개월 분량이 있다.

능호종가는 ‘의롭게 살라’는 뜻으로 외삼문에 의향문 현판을 걸어 가훈에 대신했다. 능호종가 선조인 류익청의 병자년 의병 창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창의루’를 세우고 유림에 알려 400여명이 참여하는 한시백일장을 성대하게 개최했다고 한다.

한국전쟁 당시 폭격을 맞아 문헌을 보관하던 연운당이 소실될 때 미처 구하지 못한 보물들이 안타까워 문화재보존각을 세우고 종가의 고문서를 관리하고 있다.

연운당에서 보관하고있는 눙호종가 고문서

종가에서 전통으로 내려오는 죽염제조비법을 되살려 종가 소유의 5000여평 대숲에서 아홉번 굽는 재래식 ‘연운죽염’을 생산하고 있다.

능호종가는 안채인 연운당, 사당, 사랑채인 삼한당, 정자인 창의루, 외삼문인 의향문, 연못인 세이지, 대숲 등이 오랜세월 원래 모습을 잘 지키고 있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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