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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록되지 않은 99%의 역사, 땅에서 찾다
고고학으로 본 인류 역사의 객관적 진실

‘흉노의 후예’ 자처한 신라 적석목곽분
정복 대신 동맹 택한 가야의 특별함
일본 임나일본부, 기마민족설 실체 왜곡
시베리아 전차부대 청동기, 정선에서 발굴

문명과 야망, 자아와 타자의 편견 넘어
연결된 세계, 다차원적 시선으로 조명
“가야는 영토 확장 대신 교역 네트워크를 강화함으로써 작지만 강한 나라들의 연맹으로 남았다. 일제강점기 일본 학자들은 각자의 소국을 유지하며 연맹을 했던 가야에 강대국 이미지를 덧씌우고자 했다.”(‘테라 인코그니타’에서). 사진은 김해 대성동고분군 전경. 연합뉴스

‘조선의 모피는 천금처럼 귀하니 이것을 비싼 값에 수입하면 조선도 스스로 제나라에 머리를 조아릴 것입니다’

‘관포지교’의 주인공 관중의 이야기가 실린 ‘관자’에 나오는 고조선 기록이다. 춘추시대 제나라 군주 제환공이 살았던 기원전 7세기 고조선의 실체를 보여주는 이 기록은 고조선이 중국의 제후국들에게 모피 특산품으로 유명했음을 보여준다.

고고학자 강인욱 경희대 교수는 랴오닝에서 한반도 서북한 일대에 이르는 고조선의 위치와 인적이 드문 춥고 험한 산악지역에서만 서식하는 모피동물의 특성상 고조선인은 중국과 모피사냥꾼들 사이에서 일종의 무역상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본다.

이는 압록강과 청천강 산간 오지에서 중국 전국시대 연나라 화폐인 명도전 항아리와 철제 농기구가 다수 발견된 점에서 추정이 가능하다. 강 교수는 당시 교역은 블라인드 무역으로 길가에 돈이 든 항아리를 두고 가면 다른 시간대에 모피 상인들이 와서 모피를 두고 항아리를 가져가는 식이었다고 설명한다. 고조선에서 들여온 모피는 제나라 산둥반도의 항구 척산에 집결, 사방으로 팔려나갔는데, 이 때문에 중국인들은 척산을 ‘모피의 산지’로 여겼다는 것이다.

강 교수가 펴낸 ‘테라 인코그니타’(창비)는 라틴어로 ‘미지의 땅’이란 책 제목이 말하듯 최신 고고학적 발견을 조심스럽게 헤아리며 다양한 역사문화적 발견들과 연결, 고대사의 쟁점들을 새롭게 써내려간다.

책은 고대사 논쟁거리 중 하나인 신라의 적석목곽분에 대해서도 설득력있는 해석을 펼친다. 신라를 대표하는 유적인 경주 대릉원의 적석목곽분은 경주의 자랑인 동시에 유라시아 고대사 최고의 미스터리로 꼽힌다. 통나무로 무덤방을 만들고 그 위에 돌로 덮은 이 적석목곽분은 동아시아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다. 4세기경 느닷없이 등장해 200년간 만들어지다 사라진 이 무덤이 나타나는 곳은 유라시아다.

이와 관련, 강 교수는 유라시아 유목민이 내려와 고분을 만들었다거나 신라인이 우연히 똑같은 고분을 만들었다고 우기는 것은 의미가 없다며, “신라인들이 유라시아 적석목곽분 제작 기술을 받아들여 경주에서 재창조했다고 보는 게 맞다”고 말한다.

일본학자들이 주장하는 수천 명의 흉노 출신 기마부대가 남하해 신라정권을 찬탈했다는 기마민족설은 설득력이 크게 떨어진다는 얘기다.

신라는 이즈음 흉노의 후예임을 내세우는데, 당시 흉노는 유라시아 전역에서 일종의 롤모델 같은 강국이었다는 것. 후발주자였던 신라는 흉노와의 관련성을 강조하고 기술문명을 받아들이고 수십년에 걸쳐 왕궁 옆에 거대 무덤을 지으면서 부여계 국가들과 차별화, 국력을 결집· 강화했다는 것이다.

강 교수는 “신라는 어떻게 지리적인 고립을 뚫고 북방계 문화를 받아들여 한반도를 통일하고 유라시아와 손잡았는가에 주목할 때”라고 강조한다.

일본이 주장하는 모든 가야가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임나일본부설과 관련해선, 일본이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왜곡한 가야에 대한 연구가 부족했던 점을 들며, 세계사의 보편성에 근거해 가야의 특성을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연맹이라는 독특한 형태로 나라들이 서로 정복하여 통일하지 않고 서로 경제적 번영을 누리며 거대 고분을 만든 세계사적으로 독특한 나라라는 설명이다.

오랫동안 인류의 상상과 꿈을 자극해온 전설과 세계사적으로 흥미로운 고고학적 발견도 빼놓지 않았다.

흔히 이상향으로 그려지는 대륙 아틀란티스는 처음 언급한 플라톤에 따르면, 대서양 혹은 지중해에 있었던 고대 문명으로, 막강한 전사 집단, 성체, 무기, 전차 등이 있었다. 아틀란티스를 찾으려는 오랜 수많은 탐험이 헛수고로 끝난 뒤, 20세기에 거대도시 아르카임이 시베리아 깊은 곳에서 발견됐다.

우랄산맥 근처 도시에 댐건설을 위한 기초조 도중 아르카임이 모습을 드러낸 것. 아르카임 근처 신타시타 유적에선 말과 전차를 함께 묻은 전사의 무덤도 발견됐다. 무려 4000년 전에 사용된 세계 최초의 전차다. 아르카임은 전차부대를 운영했고 원형으로 지어진 아파트 같은 집과 구획된 도시, 발달된 청동기술과 다양한 생산기술을 보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태양을 신성시한 이들은 기호들을 도시 곳곳에 새겼다. 이들의 전차문화는 유럽, 인도, 중국과 만주 일대로 전파됐다. 한반도에 전차가 들어온 흔적은 없지만 시베리아 전차부대의 청동무기 제련술인 세이마 투르비노 스타일을 보여주는 청동기 장신구가 2016년 정선 아우라지 유적에서 출토됐다.

저자는 인류의 기록 이전의 시대를 알려주는 고고학 자료를 선입견없이 있는 그대로 성실하게 읽어낸다. 문명과 야만, 중심과 변방, 자아와 타자라는 이분법과 편견을 넘어 다차원적, 다자적 시각으로 역사를 복원해나간다.

300년간 중국을 위협한 흉노제국이 만든 한국 온돌 ‘뉴타운’, 만주 북쪽 끝에서 발견된 겨울왕국, 5000년 전 네이멍구자치구 신석기인들을 강타한 전염병과 당시 방역문화, 한국이 터키의 형제의 나라가 된 이상한 연유 등 땅에 묻힌 이야기 타래의 실마리를 하나하나 풀어냈다.

이윤미 기자/ meelee@heraldcorp.com

테라 인코그니타/강인욱 지음/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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