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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너지는 인디음악의 터전…“미래의 혁오가 사라진다”
브이홀ㆍ무브홀 등 홍대 공연장 10여곳 폐업
임대료만 평균 500~2000만원 적자 구조
 
공연장 폐업ㆍ관련 업체 실업ㆍ줄도산 위기
설 무대 잃은 뮤지션…생태계 붕괴 우려
“거리두기 완화, 온라인 공연 지원” 호소
코로나19 이후 버텨오던 홍대 라이브 공연장들이 줄줄이 폐업 수순을 밟고 있다. 공연장의 폐업으로 관련 업계는 줄도산 위기에 놓였고, 뮤지션들은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제2의 혁오’가 태어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두루두루 아티스트 컴퍼니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인디음악의 터전이 사라지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습격에 가까스로 버텨오던 홍대 라이브 공연장들이 줄줄이 폐업 수순을 밟고 있다. 지난 1년간 예정됐던 모든 공연들이 취소와 연기를 반복하며 공연장을 제대로 가동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국음악레이블산업협회와 라이브클럽협동조합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이달까지 살롱 노마드, 달콤한 음악실, 브이홀, 무브홀, 퀸라이브홀, 에반스라운지 등 홍대 인근 라이브 공연장 10여곳이 줄줄이 폐업했다.

홍대 인디신을 대표하는 브이홀은 지난해 11월 문을 닫았다. 브이홀을 운영해온 주성민 브이엔터테인먼트 대표는 “코로나19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방역 지침을 지키며 공연장을 운영하는 것은 적자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며 “영업은 하지 못하는데 매달 1600만원씩 나가는 임대료와 관리비를 감당하며 끌고 가는 것이 빚더미에 앉는 상황이었다”고 털어놨다. 코로나19가 확산된 지난해 2월부터 이달 13일(이하 동일)까지 홍대 인근 공연장에서 취소된 공연은 432개. 공연은 올리지도 못하는데 이 일대 공연장은 임대료만 해도 평균 500~2000만원에 달한다. 주 대표는 “다른 공연장들도 빚을 내서 버티고 있기는 마찬가지”라고 했다.

500석 규모의 공연장으로 지난해 25주년을 맞은 ‘홍대 터줏대감’ 롤링홀도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았다. 한 해 평균 260개의 공연을 진행했지만, 지난해에는 15%만 무대에 올렸다. 김천성 롤링홀 대표는 “IMF도 겪어봤지만, 지난해처럼 힘든 때는 없었다. 너무나 힘든 상황이라는 것을 알기에 폐업을 앞둔 다른 공연장 대표에게 조금만 버티라는 이야기조차 할 수 없었다”라며 “인디신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해온 일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해왔는데 이 상황을 마주하니 지금까지 해왔던 것이 어리석은 일이었나 하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라고 말했다.

1세대 인디밴드 크라잉넛 [드럭레코드 제공]

홍대 인근 라이브 공연장은 인디 문화의 산실이다. 크라잉넛 노브레인을 시작으로 무수히 많은 뮤지션이 이 곳을 터전 삼아 대중음악의 한 축을 담당하며 꽃을 피웠다. 하지만 지금의 홍대 앞 인디신은 걷잡을 수 없는 불길에 휩싸인 모습이다. 한 번 시작된 불길은 일파만파 번지고 있다. 대중음악 공연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다음 달까지도 소규모 라이브 공연장 여러 곳이 폐업을 앞두고 있으며, 그로 인해 음향·조명 등 관련 업종은 줄도산 위기에 처했다. 주 대표는 “홍대는 한국에서도 몇 손가락 안에 드는 관광지라고 할 만큼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곳이다”라며 “라이브 문화는 홍대로 많은 예술가를 모이게 한 원천이었다. 공연장들의 폐업에서 파생된 피해가 도미노처럼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문화 생태계의 붕괴”다. 홍대를 주축으로 활동을 이어온 뮤지션들도 그들의 터전이 직격탄을 맞으며 설 자리를 잃었다. 록밴드 스키조의 기타리스트 출신이기도 한 주 대표는 “수많은 미래의 장기하와 얼굴들, 미래의 혁오가 태어나지 못하는 상황이 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공연장이 문을 닫으니, 음악인들도 당연히 공연이 줄었다. 대중음악계를 아우르는 다양한 뮤지션이 소속된 인넥스트트렌드의 고기호 이사는 “페스티벌 매출은 전년 대비 0%였고, 콘서트는 전년 대비 마이너스 85%였다”라며 “작년 1월부터 12월까지 공연을 하나밖에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국음악레이블산업협회의 조사 결과 코로나19로 공연이 취소돼 발생한 피해액은 1647억원(전국 기준)에 달했다. TV 노출이 적은 인디 뮤지션의 경우 기존의 전통적인 방식의 홍보를 할 수 없다는 것도 음악 활동에 타격을 줬다. 김 대표는 “인디신에선 앨범을 발매하면 라이브 공연장에서 발매 기념 공연을 열고, 관객들에게 앨범을 소개하는 프로모션으로 활동을 이어갔는데 공연을 못하니 앨범과 뮤지션을 알릴 기회가 사라졌다”고 설명했다.

밴드 코토바의 멤버 다프네는 “홍대에 기반을 둔 밴드 인디 음악가로서 공연장이 없어지는 것을 보면 어떤 식으로 지표를 넓혀가야 할지 막막하다”라며 “밴드로서 전통적인 음악 활동을 할 수 없고, 좋은 라이브를 보여줄 수 없는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잔나비 [페포니뮤직 제공]

▶ 음악계의 사각지대…“목소리 들어달라” 호소=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음악계에도 다양한 지원과 정책이 나오고 있다. 대중음악에선 ‘한류의 중심’인 K팝, 순수음악 분야에선 클래식과 국악 등의 장르로 쏠려있다. K팝 이외의 타장르는 붕괴 직전의 상황인 데도 여전히 사각지대다. 김 대표는 “공연장과 인디는 K팝의 근간이며, K팝과 인디가 동떨어진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혁오, 잔나비, 볼빨간사춘기 등은 인디에서 출발, K팝과의 경계를 허문 스타들이다.

결국 지난 일 년간 방역지침을 준수하며 버텨오던 홍대 라이브공연장은 ‘한국대중음악공연장협회’를 조직하고 한 목소리를 냈다. 대중음악 시장 전체를 아우르는 대중음악공연계도 소규모 라이브 공연장을 비롯해 대중음악 종사자 다수를 총괄하는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고 호소문을 냈다. “최소한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창구가 필요하다”는 공통의 의견이 업계에서 나왔다. 양측 모두 공연장 내 거리두기 기준 완화, 집객 기준 완화를 강조했다. “매진을 기록할 때에도 제작비의 60~70%가 들어가는 만큼 두 자리 띄기는 공연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입장이다.

방탄소년단 온라인 콘서트 ‘BTS 맵 오브 더 솔 원(MAP OF THE SOUL ON:E)’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제공]

온라인 공연 지원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지난 한 해 방탄소년단 등 K팝 가수들의 온라인 공연의 성공으로 각종 지원도 이 분야에 몰리고 있다. 다만 민간 공연장은 예외다.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는 290억원을 들며 온라인 K팝 스튜디오를 조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정부가 K팝 온라인 공연장을 조성할 것이 아니라 민간 공연장에 장비와 인력을 지원해달라”고 강조한다. 김 대표는 “온라인 공연이 대안이 될 순 없지만, 보조 역할은 할 수 있다”며 “소규모 공연장에 장비 등의 지원을 통해 양질의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게 해준다면 건강한 경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봤다.

현실적인 지원의 필요성도 제기된다. 대중음악계의 근간이 되는 다수의 민간 공연장, 음악가들이 공존하는 이들은 정부와 의견을 나누는 자리조차 마련하지 못했다. 당연히 현실적인 지원이나 의견을 수렴하지도 못했다. 김 대표는 “업계 모두가 힘든 상황인 만큼 현장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반영한다면 슬기로운 방법이 나올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며 “언제든 대화할 수 있도록 열려 있다. 대중문화예술계 소상공인의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여달라”고 말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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