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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영미 시인의 심플라이프] 싫었던 설날, 이젠 그리워

며칠 뒤면 구정이다. 설날은 내게 더는 설레지 않은 날이 된 지 오래지만 차례상을 준비하는 이들을 뉴스에서 보며 어릴 적 생각이 난다.

어려운 살림이었지만 어머니는 최선을 다해 적은 돈을 쪼개어 이것저것 구색을 갖추려 머리를 짜내 차례상을 차렸다. 당신을 위해서는 한푼도 쓰지 않았지만 어린 딸들에게는 가끔 새 옷을 입혔다. 이모가 짜준 알록달록한 털스웨터를 입고 생선전이며 잡채, 달콤한 한과를 포식할 수 있는 설날은 어린 내게 마냥 기다려지는 잔치였다.

아버지는 장손이었고 명절이면 세검정 개천가의 우리 집에 3대가 모였다. 차례를 마치고 친척들이 하나둘 떠난 뒤에 우리에게 남겨진 고된 일. 산더미처럼 쌓인 설거지 그릇들을 치우느라 고생했을 엄마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프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일에 파묻혀 허리를 펴지 못하는 어미를 나 몰라라, 달달한 약과를 몰래 혼자 먹어치울 궁리를 하느라 바빴던 나. 음식 그릇들을 부엌으로 나르고 내 할 일은 끝났다는 듯 어미 곁을 떠났다.

성인이 돼 명절을 싫어하게 됐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조상님께 무릎 굽혀 절하는 게 싫었고, 오랜만에 본 친척들이 건네는 “너 요새 뭐 하니?”라든가 이혼녀인 나를 딱해하는 시선이 부담스러웠고, 명절이라고 부모님 집에 찾아가는 것도 귀찮았다.

부모님을 멀리했던 1990년대의 어느 추석, 오랜만에 찾아간 평창동 집에서 두부부침뿐인 차례상을 봤다. 아버지 사업이 실패해 생활이 어려운데도 어머니가 내색을 하지 않아 나는 몰랐다. 가난해진 부모의 처지를 몰랐던 나는 미안해하기는커녕 엄마에게 화를 냈다. 왜 진작 말하지 않았냐고. 늘 부모에게 받기만 했기에 내가 이제 부모님에게 뭘 해줘야 하는 나이가 됐다는 사실을 나는 깨닫지 못했다.

그 뒤 몇 년간 어머니에게 조금씩 생활비를 부쳤는데, 나중에 아버지 일이 풀리자마자 어머니는 딸에게 받은 돈을 고스란히 갚았다. 딸에게조차 신세 지는 걸 싫어했던 우리 엄마.

어머니는 지금 우리 집 근처 요양병원에 누워 있고, 아버지가 몇 년 전에 돌아가신 뒤 차례를 지낼 집이 사라졌다. 혼자인 내게 설날이라고 크게 달라질 일은 없다. 우리끼리 모여, 늙은 어머니와 아버지와 내가 쓸쓸한 차례상을 차리던 마지막 명절이 언제던가. 그토록 지겨워하던 설날을 내가 그리워하다니. 명절이 그립다기보다 젊었던 그때가, 어미도 아비도 팔팔 살아 있던 그때가 그립다. 부모님에게 더 잘해드려야 했는데….

며칠 전 에든버러(Edinburgh)대 김영미 선생님의 초대로 한국학연구소가 주관한 웹세미나에서 유교문화를 비판하는 말을 많이 했지만 나 역시 유교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한국 유교의 역사와 오늘날 여성을 향한 태도 사이의 관계를 묻는 말에 나는 이렇게 답했다: 여성이 남성에게 순종해야 하고, 여자들에게만 순결을 요구하는 유교적 가치관이 성폭력 문화를 부추겼다. 한국 남성들은 처녀가 아닌 미혼 여성들을 존중하지 않는다. 여성 시인을 기생 취급하는 전(前)근대적인 문화가 한국 사회에 남아 있다.

글 좀 쓴다는 지식인들도 예외가 아니어서 어떤 남자 시인은 나의 미투 직후에 ‘괴물과 퇴물’이라는 댓글을 달아 나를 모욕했다. 봉건적인 윤리관에 갇힌 그에게 50대의 여성 시인은 쓸모없는 퇴물 기생이었으니. 부끄러운 줄 아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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