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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본질은 간데없고 기업인 나무라다 끝난 산재 청문회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22일 산업재해 청문회 결과가 실망스럽다. 재해가 많이 발생하는 산업 분야의 기업 최고경영자와 함께 사고를 획기적으로 줄일 효율적인 방안을 찾아보자는 취지는 시의적절했고, 백번 공감한다. 사상 처음 열리는 산재 청문회라 거는 기대도 컸다. 그런데 이날 청문회는 이런 목적과 기대와는 거리가 한참 멀었다. 시종 증인으로 출석한 기업인을 호통치고 망신만 주다 끝나고 말았다. 기업인들로부터 산업안전 확보에 대한 다짐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손에 잡히는 결과물은 하나도 없었다. 그야말로 시간만 낭비한, 일과성 ‘보여주기 쇼’라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이런 맹탕 청문회는 처음부터 예상됐다. 제대로 된 청문회를 생각했다면 일부 기업 최고경영자만 불러서 될 일이 아니다. 실제 이날 청문회에서 기업인들은 쏟아지는 청문위원들의 윽박지르기식 질책에 ‘죄송하다’는 말만 연발할 수밖에 없었다. 갑과 을의 관계나 마찬가지인 일방적 상황의 청문회에서 생산적인 논의는 애초 불가능했던 것이다. 기업인을 포함해 주요 기업의 산업안전 책임자, 노동계 관계자, 산업안전 전문가 등을 증인으로 채택해 다양하고 생생한 현장 목소리를 들었어야 했다. 그래야 단 하나라도 현실적인 방안을 건질 수 있는 것 아닌가.

더 황당한 것은 청문위원들의 질의 내용이다. 중대재해법이 국회를 통과해 시행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인 만큼 이날 출석한 기업인들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산재 예방에 최고경영자가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여야 청문위원들의 추궁도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일본 사찰 관광사진을 꺼내 들고 “신사참배를 왜 했나”라거나 외국인 최고경영자에게 “한국말을 할 줄 알아야 한다”는 등 산업재해와 무관한 질문이 적지 않았다. 그러면서 증인들은 충분한 발언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산재 관련뿐이 아니다. 청문위원들의 전문성 미비와 일방적 호통의 갑질이 난무한다면 어떠한 청문회도 그 취지를 살리기 어렵다.

안전한 일터를 만들기 위해서는 기업이 더 적극적이고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기업을 압박하고 기업인을 처벌한다고 산업재해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산재 후진국’ 오명을 벗기 위해선 노동자와 사용자, 정부 당국과 국회 모두가 함께 더욱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른바 산업안전의 치명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위험의 외주화’에 대한 구조적 문제 해소에 특히 집중할 필요가 있다. 하나 마나 한 뻔한 청문회로는 산업안전 선진국의 길은 요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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