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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풍속·생활의 지혜·나눔…600년 미풍양속 르네상스의 본향 [남도종가의 재발견]
창녕조씨 태호종가
국방 중심·대동계 공동체 주도
창녕조씨 태호공종가

“내가 참아, 대동(大同)과 평화를….”

영암 구림마을은 왕인박사가 일본에 문물을 전해주기 위해 떠난 상대포가 있는 곳이다. 걸출한 국제 지도자의 고향 답게 마을에 평화가 넘친다. 상대포엔 매년 왕인 박사의 일본 후진들이 찾아 배례한다.

창녕조(曺)씨 태호종가가 터 잡은 구림마을은 월출산과 서호 사이에 있다.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피폐해진 문화, 풍속, 생활의 지혜, 나눔의 마음을 600년간 일군 미풍양속 르네상스의 본향이다.

종가의 가훈은 ‘아인(我忍)’. 내가 참아서 이웃과 더불어 사는 공동체의 평화를 유지하는 것. 그러나 외적의 침입에는 참지 않고 분연히 떨쳐 일어났다.

7세기 신라 김춘추, 김유신 ‘양김’을 지도했던 보국대장군 조계룡이 창성(창녕)부원군으로서, 창녕조씨의 시조이다. 조계룡의 5대손 조겸이 창녕조씨 중시조이다. 조겸의 손자 조연우부터 15세 조자기까지 8대에 걸쳐 문하시중평장사를 역임했다. 고려에서도 명문세족이었던 것이다.

‘삼동에 베옷 입고 암혈에 눈비 맞아…’ 수능시험 시조로 유명한 조식(1501~1572)은 산청에서 후학 양성에 힘써 정인홍, 곽재우 등을 길러냈다.

조선전기 부제학 조상치의 7세손 조기서(1556~1591)가 영암군 서호면 일대의 유력 가문인 선산임씨 임혼의 사위가 되었는데, 기축옥사 때 정여립 등 호남 유생들의 억울함을 상소했다가 간신의 질시가 있자, 벼슬을 버리고 처가가 있던 서호에 낙향했다.

조기서의 둘째 아들인 조행립(1580~1663)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어머니 임씨 등 가족들과 함께 외가인 구림촌에 피난해 정착하면서 태호공파 태호종가를 열었다.

조행립은 이괄의 난과 병자호란 때 의병을 일으켜 공을 세웠으며 사헌부 감찰, 익산 군수 등을 거친 후 낙향, 구림대동계를 재조직해 잇따른 전쟁으로 위태로워진 인의예지, 풍속 회복을 주도했다. 재조직 이전 시기까지 포함하면 600년 전통이다. 태호공 조행립의 행적을 추모하기 위해 1677년 서호사(당시 이름은 태호사)가 건립됐다. 함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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