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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백아가씨’는 왜 ‘왜색’ 누명을 썼나

트로트 열풍이 거세다. 35.7%란 경이적인 시청률을 기록한 ‘미스터트롯’의 영향으로 방송사들이 경쟁적으로 관련 프로그램을 내놓고 있다. 트로트 가수들의 인기도 아이돌 못지않다. 그러나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트로트는 그닥 환영받지 못했다. 그 중심엔 ‘왜색’논란이 있다. 대중음악사학자이자 노래하는 교수 장유정씨가 서민들을 웃고 울린 트로트의 제자리를 찾아주는 작업에 나섰다.

트로트의 부정적 이미지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왜색 시비로 1964년 발표된 이미자의 ‘동백아가씨’에서 비롯됐다. 발표와 함께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이 노래는 이듬해 돌연 ‘방송금지곡’이 됐다. 한일수교를 앞둔 군사정부가 국민의 반대 여론을 돌리기 위해 ‘동백아가씨’에 왜색 딱지를 붙였다는 게 통설이다. 저자는 이와 관련, 당시 자료를 꼼꼼이 살피고 관련자 인터뷰를 통해 다른 사실을 알려준다. 서양 음악 전공자, 방송국 음악 담당 실무자 등 이른바 음악 엘리트들이 ‘동백아가씨’의 인기를 용납할 수 없어 왜색 딱지를 붙여 방송을 금지시켰다는 것이다.

이 왜색 낙인은 1980년대 후반 노래 운동의 일환으로 대중음악을 연구한 진보음악평론가들에 의해 더욱 굳어지는데, 이들은 트로트를 체제 순응적 거짓의 노래로 규정했다. 일제가 자신들의 지배를 공고히 하기 위해 이식시킨 갈래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트로트가 일본 전통음악인 엔카와 같은 갈래라는 통념과 맞닿아 있는데, 저자는 과연 트로트가 엔카인지 따져 나간다.

엔카는 연설을 노래로 만든 ‘엔제쓰카’, 즉 메이지 10년대에 일본에서 자유민권사상을 보급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든 노래로, 일제강점기 당시 엔카라 불린 노래는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노래와 다르다는 것이다. 1920,30년대 재즈와 여타 서양 음악 장르를 받아들여 일본화한 갈래가 1960년대 이후 ‘엔카’로 명명된 것이다. 일본이 서양음악을 받아들여 일본화했듯이 우리는 서양음악과 일본음악을 받아들여 한국의 대중음악을 탄생시켰다. 그런데 일제강점기에 형성된 트로트를 우리 노래로 인정하기 어려웠다는 설명이다.

트로트는 시대에 따라 변화를 겪었다. 일제강점기엔 ‘카추샤의 노래’‘이 풍진 세월’같은 일본 번안곡에 이어, ‘황성의 적’‘목포의 눈물’처럼 한국인이 짓고 부른 노래도 나왔다. ‘가거라 삼팔선’‘굳세어라 금순아’‘이별의 부산정거장’은 전쟁과 실향의 아픔을 달래줬다. 60년대 변화의 시대엔 이미자와 배호가 도시와 고향의 정서를 대변했으며, 70년대엔 남진, 나훈아가 서민 정서와 호흡했다.

70~80년대엔 당시 유행한 포크와 록의 영향으로 송대관의 ‘해 뜰 날’,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 최병걸의 ‘난 정말 몰랐었네’등 록트로트가 탄생했다.

국민 트로트 심수봉의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김연자, 주현미, 현철, 송대관, 태진아, 설운도 등 80,90년대 트로트 메들리 시대를 거쳐, 2000년대에 오면 장윤정의 ‘어머나’를 시작으로 10대도 즐기는 전 세대 대중가요로 거듭나게 된다. 미스트롯, 미스터트롯의 탄생은 그동안 쌓인 에너지가 폭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저자는 다양성, 변신이 가능하다는 것이 트로트의 생명력이라며, 트로트를 통해 세대공감과 소통을 경험하고 정서적 공동체를 회복했다고 평가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트로트가 무어냐고 물으신다면/장유정 지음/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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