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블랙리스트 상처에 코로나19 이중고…그래도 예술은 희망이다”
취임 후 블랙리스트 징계로 업무 시작
예술 현장의 신뢰회복이 최우선 과제

혁신과제 이행 점검·로드맵 수립 숙제
정치권 합의 통한 특별법 제정도 방법

작년 코로나19로 생존위기에 내몰려
비대면 활동 등 안정적 창작기반 조성

4차산업 혁명시대 인간소외에도 대비
‘느리더라도 제대로 가는’ 조직에 방점
블랙리스트 해결과 코로나19로 생존의 위협에 빠진 한국문화예술계를 지킬 것.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엔 벅찬 과제가 둘이나 있다. 미션 임파서블에 가깝다. 박종관 예술위 위원장은 “우리가 무너지면 한국 문화예술계가 무너진다. 아무도 가지 않은 눈 덮힌 길을 걸어가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미래 희망적인 방법론을 만들어 제시해야 하는 것이 지금 기관의 과제다”고 말한다. 이상섭 기자

한 쪽엔 블랙리스트, 다른 쪽은 코로나19. 지금 한국문화예술계가 처한 상황을 한 마디로 정리하라고 하면 ‘블랙리스트의 상처가 가시지도 않았는데 코로나19로 고사’로 요약할 수 있겠다. 예술가들이 일용직 노동시장에 내몰리고 있다. 여전히 광화문에선 블랙리스트 1인시위가 이어진다. 국내 최대 문화예술지원조직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예술위)의 고민이 깊은 이유다.

박종관 예술위 위원장은 임명되자마자 가장 먼저 책임자 징계를 단행했다. 2016년과 2017년 온 나라를 뒤흔들었던 블랙리스트를 해결하는 첫 단추였다. 임명장 받고 뒤돌아서자마자 징계안을 승인해야했다. 온 조직에 힘을 불어넣고 기를 북돋기는커녕 문책으로 임기를 시작하는 것은 사실 큰 부담이다. 그 뒤엔 사과가 이어졌다. 대표적 블랙리스트 사례로 꼽혔던 ‘팝업씨어터 사태’에 대해 사건이 발생했던 대학로예술극장 1층 씨어터카페에서 직접 고개를 숙였다. 과거를 반성하고 앞으로 재발을 방지하겠다는 약속이었다. 90도로 절하며 ‘죄송하다’, ‘사과드린다’며 피해자들의 마음을 돌리고자 노력했다. 실제로 블랙리스트 사태해결 ‘이행협치추진단’에서 권고한 16개 과제 중 국가예술위독립과 자율운영협약 체결을 제외한 나머지 과제는 모두 이행을 완료하고, 정상추진 중이다.

그러던 2020년. 코로나19로 모든 예술계가 얼어붙었다.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 시작됐다. 예상치 못했던 변수에 많은 계획을 중단하고 생존을 위한 지원으로 급선회 했다. 박종관 위원장은 “희망적 방법론을 만들어 제시하는 것이 우리의 일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고사 직전의 상황에 몰리더라도, 아직은 ‘희망가’를 접을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헤럴드경제가 박 위원장을 만나 지난 2년의 예술위 성과와 남은 과제, 그리고 코로나19시대 예술의 역할과 본질적 가치 확립을 위해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물었다. 아래는 일문일답.

▶취임 후 가장 기대가 컸던 부분이 블랙리스트 청산이다. 직접 비전선포를 하시면서 이에 대해 구체적인 실행안까지 발표하셨는데, 어느 정도 실행됐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청산은 제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으로 취임하면서부터 최우선 과제였다. 지난 2년의 임기동안 ‘블랙리스트 집행기관’이라는 오명을 벗고 예술 현장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역점을 뒀다.

실제로 블랙리스트 사태 해결을 위한 민·관협력 이행협치추진단에서 예술위에 권고한 16개 과제 대부분을 이행했다. 물론 아직도 예술인들이 보시기에 부족한 부분이 많다고 생각한다. 블랙리스트 문제는 기한을 정하고 해결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다. 피해자들이 끝났다고 해야 끝난다. 쟁점은 영원히 남는다. 한국문화예술을 지켜온 우리 기관 입장에선 현장 신뢰를 회복해야하는 문제가 있다.

▶여전히 블랙리스트 해결을 위한 1인 시위가 이어지는 등 현장의 목소리가 나온다.= 헌재가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헌법에 위배된다”고 판시했음에도 지금 이 시간에도 광화문 사거리에서 블랙리스트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시위가 이어진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현장의 엄중한 경고라고 생각한다. 과거 잘못에 대한 성찰과 대응, 앞으로 재발방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마련 등 다양한 시도를 시작했지만 신뢰를 얻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한 번에 불식될 일은 아니지만 다시 원점으로 돌아 간 것은 아닌가 하는 초조함이 있다.

▶실행안 외에 달리 고민하고 있는 것이 있나?= 예술현장과 예술위 현장소통위원회, 정부, 이행협치추진단 그리고 국회와 함께 협력해 예술위 내부 TF를 구성하려 한다. 블랙리스트 관련 혁신과제 이행현황을 점검하고 향후 로드맵 수립과 예술현장 소통, 협력 거버넌스 운영 활성화가 남아있다.

또한 조심스럽지만 특별법이 필요하지 않나 싶다. 블랙리스트 피해자분들 중 소송을 진행중이신 경우가 많다. 법정에서 판단을 받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엄연히 법정 다툼이다. 블랙리스트라는 국가적 폭력을 해결하는 것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여야간 합의를 한다면 특별법도 방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코로나19가 올해도 지속 될 것으로 보이는데 위원장이 생각하는 문화예술계의 가장 시급한 과제와 대책은 무엇인가요?= 지난해 예술계는 코로나라는 예상치 못한 변화 속에 무방비로 노출됐다. 공연장과 전시장은 문을 닫았고 많은 예술가, 예술단체들은 관객과 접점을 잃고, 경제적 어려움 속에 하루하루 버텨야했다. 큰 변화 이후의 과정을 살펴본다면 생존-적응-재창조가 일어난다. 지금 우리는 ‘생존’ 단계다. 기초예술을 살려야 한다. 그 이후 발전과 창조가 가능하다.

올해는 우선 비대면 상황에서도 예술활동을 지속적으로 이어갈 수 있도록 안정된 창작기반을 마련하려 노력할 것이다. 작년에 기존 창작지원 사업을 확대했고 온라인지원사업과 유통플랫폼 조성, 예술가 일자리 지원, 사전 연구지원 등 기존 대면방식 왜 다양한 방법을 강구했다. 올해는 긴급재난지원도 시작한다.

또한 관객과 대면할 수 있는 공연장, 전시장 재개관에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한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공공 공연장도 획일적으로 폐쇄했다 열었다를 반복했다. 안전한 공연장이라는 신호를 지속적을 주기 위해 철저한 방역활동 속 예술활동을 보장하는 사회적 합의와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코로나같은 유사대응체계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유관기관들 사이 위기대응 협치구조를 확보하거나, 현장 피해규모를 추정하고 긴급대응하는 정보시스템, 그를 통해 적재적소에 필요한 지원이 가능한 구조가 필요하다.

▶ 그렇다면 예술지원은 어떠해야할까요? 위원장 개인의 철학이 궁금합니다.= 예술은 필수재이자 영혼의 양식이라고들 한다. 코로나19로 위축된 문화예술현장을 보면서 더욱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예술지원은 궁극적으로 공동체를 위해 존재한다. 우리 사회가 더 격조높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마땅히 지불해야할 ‘통행료’같은 것이다. 4차산업혁명시대 기계가 가져올 인간소외를 누군가 대비해야한다면 그 ‘누군가’가 바로 예술이다.

그러나 예술가들이 전 생애를 걸어도 성공확률은 0에 수렴한다. 시장실패 영역이고, 승자독식의 세상이 바로 예술 현장이다. 국가가 나서서 마땅히 지원해야하는 이유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이외에도 이슈가 많습니다. ‘미투(me too)’로 촉발된 공정성 요구 등 결국 현장과 소통이 어느때보다 중요한데, 위원회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공정성은 지금 이 시대의 목소리다. 표준화에 대한 문제가 떠올랐다. 지속적 노력해야 하고 내 뒤의 사람도 노력 해야한다. 미래희망적인 방법론을 만들어서 제시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다.

현장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현재 현재 3개의 소위원회(현장소통, 정책혁신, 성평등예술지원)를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엔 아르코 현장 대토론회를 3일간 온라인으로 개최해 예술계 현안에 대해 듣고 소통하는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다. 올해는 지역과 직접 만나려한다.

▶ 기금 고갈 문제도 있었다.=2003년 모금제 폐지후, 기금감소로 고갈위기가 있었다. 다행히 2017년 문예기금 재원확보가 대선 주요공약으로 지정되면서 체육기금 등 타 재원이 문예기금으로 전입되고 있다. 2018년말부터 흑자로 전환했고 2020년 말 기준 1600억원 정도 기금이 적립된 상태다.

다만, 장기적인 수입기반이 안정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전문가 분들의 연구를 통해 관련 법령 개정을 통한 확정적인 법정 전입금 유입 등 실효성이 높은 재원 안정화 방안을 논의 중이며 근본적 해결 방안을 관계 부처와 계속 협의하고 있다.

▶올해가 임기 마지막 해다. 그간 가장 힘써왔던 정책과 성과는?= 블랙리스트 사태로 잃어버린 예술 현장과 신뢰회복 소통이 최우선이었다. 2019년 5개였던 소위원회를 10개로 대폭 확대하고, 예술 현장에서 오가는 화두와 의제를 공청회, 토론회, 집담회 등 현장과 소통하면서 위원 선임, 지원심의제 개선 극장·미술관장 개방형 직위도입 등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

효율성 중심의 기존 관점을 버리고 ‘느리더라도 제대로 가는’ 협의제 정신과 원칙을 담은 아르코 비전 2030도 발표했다. 우리는 ‘창조의 기쁨을 함께 만드는 예술현장 파트너’다. 어려울때나 힘들때나 늘 같이 하는 파트너 답게 창작 과정 지원, 청년 예술가 지원 등 중장기적 관점을 도입했다. 또한 예술인이 안심하고 창작할 수 있는 일터 조성을 위한 제도 개선도 중요사항이었다. 문학 원고료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고 21년 공연예술·시각예술 분야 도입을 위한 조사연구를 추진할 예정이다. 지원사업 참여시 상해보험 가입 의무화와 성희롱·성폭력 가해자 지원 대상자 배제를 조항에 넣었다. 예술분야 지원기관 최초로 영유아 자녀돌봄비를 보조금으로 편성할 수 있게 해, 경력단절 예술인들이 다시 예술활동을 시작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공정한 토대를 마련하기 위한 시작일 뿐이다. 기관의 힘 만으로는 부족하다. 예술계의 많은 도움과 협조가 필요하다. 이한빛 기자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