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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길용의 화식열전] ‘왕’이 된 남자 최현만
‘회장’은 직장인데 최고영예
봉건시대 ‘왕위’에 버금갈수
수평적 조직문화 확산으로
‘직급=명예’ 점차 사라질듯

중국 주(周) 나라때까지는 왕이 군주였다. 제후의 작위는 공후백자남(公侯伯子男) 등 다섯으로 구분했다. 전국시대에는 큰 제후들이 모두 왕을 칭했지만 진(秦)이 전국을 통일한 후 군현제(郡縣制) 실시하면서 왕를 없앴다. 대신 ‘왕보다 위대한 왕’의 의미로 ‘황제(皇帝)’가 만들어졌다. 임금 황(皇)은 ‘크다’·‘밝다’는 뜻의 백(白)과 왕(王)이 합쳐져 만들어진 글자다.

유방(劉邦) 세운 한(漢)나라는 초기 군국제(郡國制)를 채택, 백・자・남작을 없애고 공・후작 위에 왕(王)을 뒀다. 특별한 공로가 있는 신하에 왕위에 해당하는 아홉 가지 특전(九錫)을 내렸는데 한 나라의 ‘통치자’임을 상징하는 물건들이다. 한고조 이후 유(劉) 씨가 아닌 왕은 사라졌지만 이후 다시 등장한다. 전한 말의 왕망(王莽) 후한의 조조(曹操). 위(魏)의 사마소(司馬所)가 유명하다. 여러 왕조가 명멸한 남북조시대에는 동진(東晉)의 환현(桓玄)과 유유(劉裕), 유송(劉宋)의 소도성(蕭道成), 소량(蕭梁)의 진패선(陳覇先), 북주(北周) 양견(楊堅) 수(隋)의 이연(李淵) 등 구석을 받았다. 모두 새 왕조의 문을 연 인물들이다. 당(唐)·송(宋) 때 유력 지방관에 부여했던 평왕(平王)을 끝으로 이후에는 황제의 자식들에게만 왕호가 부여됐다. 이성(異姓)의 왕은 명(明)을 배반하고 청(淸)을 도왔던 오삼계(吳三桂)가 사실상 마지막이다.

일본도 통치자를 ‘오키미(大王)’로 부르던 시절에는 왕이 한 사람 뿐이었다. 하지만 ‘천황(天皇)’으로 표기하면서 아들들에게 ‘친왕(親王)’ 호칭을 부여한다. 천황 위에도 왕이 존재했다. 전직 천황인 상황(上皇). 출가한 전직 천황인 법황(法皇)이 등장한다. 이들이 정치적 실권을 행사하기도 했는데 이를 고쇼(御所) 정치라고 한다. 중국의 제후에 해당하는 지방정권 수장은 다이묘(大命)으로 불렀고 실질적 통치자들도 셋쇼(攝政), 관바쿠(關白), 타이코(太閤), 쇼군(將軍) 등으로 부를 뿐 왕이라 부르지는 않았다. 일본에서 ‘왕’은 천황 일족의 전유물이었다.

동북아 3국 가운데 왕호가 가장 적은 곳이 우리나라다. 원나라가 고려 국왕이나 왕족에 심양왕(瀋陽王) 작위를 내린 것을 제외하면 오로지 최고 통치자에만 왕호를 썼다. 신하들은 공(公), 군(君)만 붙였다. 조선 초에는 상왕, 태상왕까지 등장하는데 태종을 제외하면 실권을 가진 왕은 아니었다. 대한제국이 되면서 친왕이 등장했지만 잠시 뿐이다. 흥선대원군은 대한제국에서 대원왕(大院王)종으로 추존됐다.

서양에서는 교황, 로마제국(신성로마제국 포함), 스페인, 대영제국, 나폴레옹(1・3세)이 황제 칭호를 썼다. 고대 로마, 동・서로마제국, 신성로마제국 등이다. 이슬람 제국에서는 칼리프가 교황, 술탄이 왕 또는 대왕에 해당한다. 중앙아시아에서는 대칸(大汗)이 황제, 가한(可汗)이 왕과 비슷하다.

나라에 통치자가 있다면 기업에는 최고경영자가 있다. 공작이 전무, 후작이 상무라면 왕에 해당하는 자리는 사장(president)이다. 기업 규모가 커지고 기업집단(group)까지 등장하면서 여러 사장을 거느리는 ‘회장(chairman)’이 등장했다. 나라로 치면 황제 격이다.

국내 기업에서 은행지주 회장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회장이 최대주주인 기업 총수다. 하지만 재계를 보면 총수만 회장인 것은 아니다. 삼성에서는 이수빈 삼성경제연구소 회장, 7일 승진한 김기남 삼성종합기술원 회장이 있다. 경영권 승계 기간에 전문경영인으로서 섭정 역할을 한 SK의 손길승 회장도 있다. 회장이 가장 많았던 곳은 현대가다. 이명박 현대건설・인천제철 회장을 시작으로 이익치 현대증권 회장, 이계안 현대카드・캐피탈 회장, 박정인 현대모비스 회장, 유인균 현대하이스코 회장 등이 있었다. 현직에도 현대중공업그룹 섭정 격인 권오갑 회장이 존재한다. 현대그룹 정주영 창업회장은 형제들도 독립해서 ‘회장’이 됐다. 그래서 생겨난 말이 ‘왕회장’이다. ‘왕 중의 왕’인 셈이다.

정주영 회장을 별세했지만 재계에서 왕회장은 비공식적으로 통용된다. 은퇴는 했지만 명예회장에는 오르지 않은 회장의 부친 또는 윗사람을 구분하기 위한 호칭이다.

최현만 미래에셋증권 부회장이 회장으로 승진했다. 왕이 된 셈이다. 30대이던 1999년에 사장이 됐고, 2007년 부회장이 된 이후 14년만에 기업인으로서는 최고의 자리에 오른 셈이다. 미래에셋이 오늘의 그룹을 이루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경영자 가운데 한 사람이니 나라로 치면 ‘왕위’를 받을 만도 하다. 이제 아마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을 ‘왕회장’으로 구분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수평적 조직관계를 강조하기 위해 이제는 ‘작위’가 된 직급을 아예 없애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그에따라 ‘회장’의 시대도 점차 저물고 있다. 최근 새롭게 등장하는 기업을 보면 ‘회장’ 직함을 잘 사용하지 않는다. 최고경영자(CEO), 대표이사 등으로 불리기를 선호한다. 가장 높은 호칭이 ‘(이사회) 의장’이다. 직원들에게는 작위를 쓰지 말라고 하면서 경영진이 ‘옥상옥(屋上屋)’의 작위를 선호한다면 앞뒤가 맞지 않을 수 있다. 앞으로 ‘회장’ 작위는 더 희귀해질 게 분명하다. 최 회장으로서는 참 귀한 명예를 얻은 셈이다.

ky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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