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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행 앞 줄 서 대기해야 할 판…돈 구하기 어렵네” 곡소리 나는 기업들
기업 대출 금리, 24년 9개월 만 최대폭 상승
신용스프레드, 2009년 4월 이후 최고치
“내년 금리 추가 상승 가능성도”

[헤럴드경제=김현경·서정은 기자] # “요새 기업대출 심사가 팍팍해져서, 승인이 나지 않아서 힘듭니다. 보증서도 더 달라고 하고, 담보도 더 보충하라고 해요”

코스피 상장사인 중견기업 A사 최고재무관리자(CFO)는 한숨을 쉬면서 이같이 말했다. 회사채 시장 악화로 자금을 조달하러 은행 문을 두드리는 기업이 많아진 데다가 은행도 건전성 관리에 부쩍 신경을 쓰면서, 대출 승인이 잘 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오히려 은행이 현금성 자산이 많은 곳을 골라 대출에 나서면서 기업간 양극화가 벌어지고 있다”며 “이젠 은행 앞에 줄 서 대기할 판”이라고 전했다.

자산이 있어도 유동화를 시키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국고채와 회사채간 금리 차이를 나타내는 신용스프레드는 13년여 만에 최고 수준으로 벌어졌다. 그만큼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얘기다. 이에 돈줄이 마른 기업들이 은행으로 달려가면서 기업 대출 금리는 24년여 만에 최대 폭으로 상승했고, 대기업이 올 3분기 이자로 낸 금액만 6조원에 달했다. 정부가 연일 유동성 공급 대책을 내놓으며 시장 안정화에 힘을 쏟고 있지만, 단기자금시장의 ‘돈맥경화’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란 평가다.

금융위기보다 더 심각…기업 대출 금리 한 달 새 0.61%포인트 올라

한국은행이 29일 발표한 ‘금융기관 가중평균 금리’ 통계에 따르면 10월 예금은행의 기업 대출 금리(가중평균·신규취급액 기준)는 연 5.27%로 9월보다 0.61%포인트 높아졌다. 이는 유럽 재정위기가 발생했던 2012년 9월(5.30%) 이후 10년 1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의 기업 대출 금리다. 월간 상승폭은 외환위기였던 1998년 1월(2.46%포인트) 이후 24년 9개월 만에 최대폭이다.

기업 대출 중에서도 대기업 대출 금리가 5.08%로 한 달 새 0.70%포인트나 뛰었다. 중소기업 대출 금리는 전월 대비 0.62%포인트 오른 5.49%를 기록했다.

경기 둔화와 실적 부진으로 기업들의 대출 수요가 늘어나고, 기준금리 및 시장금리 상승으로 대출 금리도 오르면서 기업들은 대출 이자로 막대한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실정이다.

실제로 국내 주요 대기업들은 올해 3분기에 이자로만 6조원을 낸 것으로 집계됐다. 30일 기업데이터연구소 CEO스코어가 국내 매출 상위 500대 기업 중 분기보고서를 제출한 268곳을 조사한 결과 이들 기업의 3분기 이자비용은 총 6조1540억원으로 지난해 3분기(4조3321억원) 대비 42.1% 급증했다.

이들 기업의 3분기 영업이익을 이자비용으로 나눈 이자보상배율은 5.6배로, 전년 동기(11.4배)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는 기업이 부채에 대한 이자를 지급할 수 있는 능력이 낮아진 것으로 풀이된다.

팬데믹 때보다 배 이상 벌어진 신용스프레드…CP 금리도 연일 연고점

기업들의 자금 조달 환경을 나타내는 신용스프레드도 나날이 악화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29일 기준 우량 등급 회사채(AA-) 3년물 금리와 국고채 3년물 간 금리 차이는 174.5bp(1bp=0.01%포인트)로 전날보다 0.9bp 더 벌어졌다. 이는 지난 2009년 4월 27일(177bp) 이후 13년 7개월 만의 최대폭이다. 과거 10년간(2012~2021년) 평균치인 43bp를 크게 상회하고,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고점 78bp 보다도 배 이상 확대된 수준이다.

신용스프레드는 국고채와 회사채 간 금리 격차로, 신용스프레드가 커졌다는 것은 기업들의 자금 조달 비용이 높아졌음을 의미한다.

기업들이 단기자금을 융통하기 위해 발행하는 기업어음(CP) 금리도 연일 연고점을 갈아치우고 있다. CP 91일물 금리는 29일 5.52%를 기록하며 지난 9월 22일 이후 47거래일 연속 연중 최고치를 경신했다.

정부 유동성 대책으론 한계…“내년도 어렵다”

단기자금시장이 급격히 경색되자 정부는 부랴부랴 유동성 공급 대책을 발표했지만 효과는 제한적일 전망이다. 여전히 높은 수준의 금리와 은행의 건전성 관리, 경기 둔화 우려 등을 감안하면 내년 자금시장 환경도 녹록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김인 BNK투자증권 연구원은 “현재 기업들은 대출 수요가 많은데 은행권에서는 위험(리스크) 관리를 위해 대출을 자제하는 분위기고 내년에도 줄어들 수 있다”며 “정부가 4분기에 향후 경기 전망을 하향 조정하거나 충당금을 더 쌓으라고 요구할 경우 기업 대출 금리가 더 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대출 금리는 기준금리에 가산금리를 더해 결정되는데 기준금리 정책 선회(피봇)가 당장은 쉽지 않고, 가산금리도 향후 경기 침체 우려나 부도 위험을 반영하기 때문에 추가 상승 가능성이 남아있다. 이에 김 연구원은 “최소 내년 1분기까지는 대출 금리의 변동성이 우상향할 것”으로 내다봤다.

김명실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정부가 최근 발표한 채안펀드의 2차 캐피털콜 실시, 산업은행의 증권사 발행 CP 매입프로그램 심사시간 단축 등은 연말을 앞두고 금융기관과 기업들의 자금 조달 우려 확산 및 단기금융시장 경색 심화 가능성에 대한 조치로 풀이되지만 단기자금시장은 어려움이 잔존해 있다”면서 “부동산 경기 부진, 연말 자금 수급 변화 등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도 상존한다. 정책 지원으로 당장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해갈 수 있으나 단기자금시장에 가시적 성과가 확인되기 까지는 시일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pink@heraldcorp.com
lu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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