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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첼리스트 최하영·피아니스트 손정범 “서로 다른 감정을 만나는 시간” [인터뷰]
오는 29일 예술의전당 듀오콘서트
실험과 도전 바탕한 현대곡 무대
“이름은 어렵지만 흥미로운 음악”
흔들림 없이 걷는 음악여정의 날들
최 “매일이 쌓여 만드는 오늘의 결과”
손 “다시 최고의 피아니스트 꿈 꿔”
피아니스트 손정범과 첼리스트 최하영이 다가오는 듀오 콘서트 낯설고 생소한 ‘희귀곡’을 들고 나온다. “20세기 곡으로만 구성”한 ‘실험과 도전’이다. 임세준 기자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셀시, 어때?” (최하영), “셀시? 아…. 어, 그래.” (손정범)

‘현대음악의 기인’이라고 불리는 이탈리아 작곡가 셀시(1905~1988). 첼리스트 최하영은 지난 1월 셀시의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디알로고’’라는 곡을 발견했다. “완전히 매료된” 이 곡을 그냥 보낼 수 없었다. 피아니스트 손정범에게 바로 물었다. 다가오는 ‘최하영 & 손정범 듀오 콘서트’(3월 29일·예술의전당 IBK챔버홀)를 위한 제안이었다. 두 사람은 자신들의 이름을 건 콘서트에서 낯설고 생소한 ‘희귀곡’을 들고 나온다. “20세기 곡으로만 구성”한 ‘실험과 도전’이다.

“음악이 멋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다만 자부할 수 있는 건 그 무엇 못지 않게 어렵다는 거예요. 어렵다는 건, 그만큼의 학문적 깊이가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고요. 그게 참 매력적이에요. 어려워서 계속 빠지게 돼요.” (손정범) 이를 테면 ‘셀시’도 마찬가지다. “이전까지 가본 적 없는 세계에 한 발자국 내딛게 되니 음악이 지겹고 싫어질 틈이 없어요.” (손정범)

일찌감치 세계 무대에서 이름을 알린 두 사람이 만났다. 한국을 대표하는 두 젊은 음악가의 만남 안엔 이들이 걸어온 음악의 길과 방향성이 자연스럽게 묻어났다. 피아니스트 손정범(32)과 첼리스트 최하영(25)을 최근 서울 경희대에서 만났다. 다가올 공연 준비를 위해 “매일 서너 시간씩 연습”하는 곳이다. 손정범이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피아니스트 손정범과 첼리스트 최하영. 임세준 기자
“이름은 어렵지만 흥미로운 음악”…첼로와 피아노의 대화

듀오 콘서트를 위한 선곡이 특별하다. 두 사람은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에 두려움이 없다. 공연에선 미국 현대음악 거장 스트라빈스키와 셀시, 브리튼, 루토스와프스키 등의 연주가 기다리고 있다.

“한국 관객들에게 생소한 곡도 있어요. 동시대 작곡가들이지만 각자 다른 언어를 가지고 있는 곡들이에요.” (최하영)

연주회에서 잘 선곡되지 않기에 낯설 수 있지만, 손정범은 “이름만 어려울 뿐 (관객들이) 힘들어 할 만한 곡은 없다”고 말했다.

각각의 곡마다 개성과 색깔이 달라 도리어 흥미롭다. 스트라빈스키의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이탈리아 모음곡’은 “바로크 음악 전통과 현대적 기법이 어우러져 이중적인 매력이 있는 곡”(손정범)이다.

브리튼의 ‘첼로 소나타 C장조 Op.65’에선 첼로의 다양한 주법이 쏟아진다. 2악장은 독특한 주법의 향연이다. “양손을 이용한 피치카토 (현을 손으로 뜯어 연주하는 기법)도 나오고, 활을 튕기기도 해요. 2악장 내내 다른 주법을 보여줘요. 총 다섯 개의 악장에서 첼로와 피아노가 여러 가지 음역대로 대화하는 곡이에요.” (최하영) “개수로 따지기 어려울 만큼 많은 주법들이 나와 같이 연주하면서도 재밌게 보게 되더라고요.” (손정범) 최하영은 “한 곡 안에 극적인 부분이 많아 상상력을 자극하는 여러 요소들을 어떻게 하면 잘 표현할 수 있을지 연구 중”이라고 했다.

루토스와프스키의 ‘그라베’(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변용)는 “감정적으로 진하고, 진중한 곡”(손정범)이다. “멜로디가 있기 보다는 작은 여러 음이 모여있어요. 다양한 리듬과 음역대가 어우러져 있죠.” 최하영의 이야기에 손정범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더했다. “제목 자체에서 오는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깔린 곡이에요. 드라마틱하죠.”(손정범)

연주회의 선곡은 두 사람의 음악적 호기심과 경험이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첼로를 처음 잡았을 때부터 “새로운 악보를 받으면 들고 뛰어다니며 좋아했던” 어린 최하영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 지난해 열린 퀸 엘리자베스 국제 콩쿠르에서도 과감하게 현대곡의 비중을 높여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최하영이 쓰는 첼로 역시 니콜라 베르곤치가 19세기에 제작, “현대곡 연주에 적합한 악기”다.

손정범은 “관객으로 와서 연주회를 보고 싶을 만큼 재밌고 흥미로운 공연”이 될 거라 했다.

“우리 모두 저마다 처한 환경과 상황이 다르잖아요. 고전과 달리 현대곡은 저마다 다른 감정을 만난다는 매력이 있어요. 누군가는 감동할 수도, 누군가는 유머러스하다고 느낄 수 있죠. 각각의 곡마다 다른 언어를 가지고 있는 만큼 한 사람 한 사람이 서로 다른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손정범, 최하영)

손정범은 2017 ARD국제음악콩쿠르 우승하며 세계 무대에서 활약했고, 지난해 9월부턴 경희대에서 후학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임세준 기자
두 번째 만남…“같은 억양을 가진 사람들”

두 사람의 듀오콘서트는 지난 석 달 사이 벌써 두 번째다. 지난해 12월의 연주회를 통해 처음 만났다. 첫 연주회를 통해 ‘음악적 성향’을 파악했고, 이번 콘서트를 준비하며 다양한 교집합을 발견했다. 최하영은 “서로의 스타일에 대해 잘 알고 있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고 말했다.

“무대에서 함께 하고자 하는 것들이 계획한 것 이외에도 잘 통해요. 즉흥적이라기 보단, 틀 안에서 다양한 시도를 하는 편이에요.” (손정범)

각자의 음악적 경험과 수련의 결과가 쌓여 새로운 아이디어와 해석을 만들어낸다. “개인의 연습을 통해 갖춘 작은 소양이지만, 그 경험이 있기에 무대에 올라가면 재밌는 것들이 많이 생기더라고요.” (손정범)

손정범은 2017 ARD국제음악콩쿠르 우승하며 세계 무대에서 활약했고, 지난해 9월부턴 경희대에서 후학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음대 ‘최연소 교수’다. 그는 동료이자 후배, 동생인 최하영을 보면서 “배우는 점이 많다”고 했다.

“옆에서 지켜보면, 연습은 물론 생활습관, 공연을 준비하는 자세까지 공연에 모든 초점이 맞춰져 있어요. 하영이를 보며 저도 마음을 다잡는 것이 있어요.”

최하영은 공연 일주일 전부터 “디데이를 맞추는 삶”을 시작한다. 컨디션 관리의 일환이다. 특히 연주회 전날엔 당도가 높거나 자극적인 음식은 피한다. 손의 붓기 등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일주일 정도는 미리 준비하고 관리해요. 체력 관리도 음악을 하는 데에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리사이틀이 있을 땐 체력적, 정신적으로 모든 포커스를 맞춰요.” (최하영) 물론 컨디션이 좋지 않다고 무대를 망친 적은 없다. “감기든 뭐든 설사 안 좋은 상황이 발생해도 무대에선 아드레날린이 나와요.”(최하영) “대신 끝나고 아프죠.(웃음)” (손정범)

두 번의 연주회를 준비하며 두 사람은 음악으로 교감했다. 무엇보다 음악적 가치관, 방향성에 대한 공통 분모를 확인했다. 손정범은 “우리가 다시 공연을 재밌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음악 안에서 같은 언어와 억양, 표현 방식의 공통점을 발견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람마다 다양한 억양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이 다르면 좀 힘들 수 있어요. 말하고자 하는 방식에 약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어도 같은 억양을 가지고 있어 해석의 방향성에 있어 논쟁을 한 적도, 호흡을 맞추는 과정에서 힘든 점이 생긴 적도 없어요.” (손정범)

특히 음악을 대하는 방식과 자세도 닮아있다. 악보 안에 그려진 무수히 많은 음표, 그것이 만들어내는 화성과 코드의 변화, 빈 공간까지도 허투루 지나치지 않는다. “전 그 모든 순간들이 소중하다고 생각하는데, 때론 그냥 지나치는 사람들도 만나게 돼요. 누가 맞다는 것이 아니라, 제가 하는 것과 다른 거죠. 그런데 이 친구가 음악을 풀이하는 것을 보면 저보다 더 진하게 대하더라고요. 그래서 오히려 제가 더 편해요.” (손정범)

지난해 열린 퀸엘리자베스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한 첼리스트 최하영은 “감사한 것은 (콩쿠르 이후) 관객에게 내 음악을 더 많이 들려줄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기나긴 음악 여정 위에 선 지금은 “많은 것을 알아가며 공부하고 있는 때”라고 한다. 임세준 기자
韓 대표 젊은 음악가…흔들림 없이 걷는 매일의 힘

두 사람의 이름 옆에선 ‘한국을 대표하는 젊은 음악가’라는 타이틀이 따라온다. 오랜 단련을 통해 “자신만의 정체성을 담아낸 음악적 목소리”를 찾았고, 콩쿠르라는 시험대를 거치며 무수한 인정이 쌓였다.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이후 최하영의 삶에도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무대의 숫자가 늘었고”, 연주여행이 많아졌다. 하지만 음악과 함께 하는 삶은 콩쿠르 이전이나 이후나 “변함이 없다”. 손정범도 이미 지나온 길이다. 하나의 음악을 완성하기 위해 “작곡가의 생애와 역사, 그 시대의 예술작품을 공부”(최하영)하고, 스스로가 생각한 이상을 “표현하는 능력을 갖추기 위해 끊임없이 담금질”(손정범) 한다.

“탐구하는 시간 못지 않게, 내가 아는 것을 전달할 수 있는 능력도 필요해요. 아는 것이 많다고, 관객에게 모두 전달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아는 것이 생겼으면 전달할 수 있는 능력도 쌓아야 해요. 그건 다른 곳이 아닌 자신의 네모난 방에서 만들어지는 거예요. 공부와 표현력, 둘 중 하나라도 결여되면 혼자 하는 음악인 거죠.” (손정범)

오늘도 꾸준히 그 길을 가고 있다. 최하영은 “감사한 것은 (콩쿠르 이후) 관객에게 내 음악을 더 많이 들려줄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기나긴 음악 여정 위에 선 지금은 “많은 것을 알아가며 공부하고 있는 때”라고 한다. “매순간이 쌓이고, 쌓여 저를 만들어가는 것 같아요.” (최하영)

연주 일정은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 듀오 콘서트 이후에도 두 사람은 각자의 자리에서 저마다의 음악을 이야기한다. 최하영은 다음 달 벨기에를 시작으로 이탈리아, 캐나다, 브라질 등 새로운 도시와 나라에서의 공연을 이어간다. 특히 브라질에선 3주간의 투어를 계획 중이다. 이번에도 관객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주기 위해 “새로운 곡을 준비 중”이다. 그도 처음 연주하는 슈트라우스의 ‘돈키호테’다.

“아무리 접하기 어려운 레퍼토리라도 어떻게 접근하느냐에 따라 달리 들릴 수 있다는 걸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를 통해 알게 됐어요.” 현대곡을 선곡하며 관객의 반응도 걱정했으나, “생소하지만 인상적이었다”, “감동적이었다”는 반응도 들었다. “그래서 조금 더 욕심을 내고 있어요. 좀 더 대범하게요. 언젠가는 바흐와 윤이상, 바흐와 펜데레츠키와 같은 조합도 계획 중이에요. (웃음)” (최하영) 그는 2018년 폴란드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 국제콩쿠르에서도 우승했다.

손정범의 ‘1인 2역’도 계속 된다. 학교에선 신입생부터 대학원생까지 14명의 학생들과 수업을 통해 교육자의 얼굴을 하고, 동시에 4월부턴 독일과 한국(5월 ‘마음을 담은 클래식’, 솔로 리사이틀)의 무대를 오가며 연주자의 옷을 입는다. 조금은 이른 나이에 교육자의 길을 선택한 것은 솔로 연주자로의 오랜 활동으로 혼자가 당연했고, “사람들과의 만남을 즐기지 못했던” 스스로에게 “리프래시(refrash)가 필요했다”고 한다. 그는 “동료 교수님, 나의 클래스, 학생들…. 커뮤니티가 생긴 것 같아 좋다”고 했다. 단단하고 흔들림 없는 바위처럼 묵묵히 걷는 길엔 오랜 꿈도 잊지 않고 새기고 있다.

“어릴 땐 최고의 피아니스트가 되는게 꿈이었어요. 그러다 조금은 지치고 현실적인 생각들이 오갔는데, 다시 ‘최고의 피아니스트’가 되는 것을 해보고 싶어요. 정말 잘 치고 싶은 마음에,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은 연주자가 되고 싶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아직 어릴 때의 꿈을 키우지 못했으니, 못 이루더라도 해보고 싶어요. 궁극적 목표는 더 잘해보는 거예요. 연주도, 학생들의 레슨도요. 제 능력 안에서요.” (손정범)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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