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 회장을 격노케 한 삼성테크윈 K-9 자주포는 최근 3년 간 고장과 사고가 끊이지 않으면서 명품 국산무기라는 자존심에 스스로 먹칠을 했다. 이런 사실들이 언론 등에 그때마다 크게 부각됐고, 세계 정상급 자주포로 알려졌던 K-9과 이를 만든 삼성테크윈, 나아가 삼성의 이미지까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최고경영자(CEO)의 경질로 이어졌을 정도라면 삼성의 인사스타일 상 ‘업의 본질’을 훼손할 정도의 중대 비리가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K-9 자주포에는 무슨일이 있었던 것일까.
지난해 11월 23일 오후 북한군이 방사포(다연장로켓) 등으로 연평도를 포격했을 때 연평도에는 모두 6문의 K-9 자주포가 있었고 해병대가 즉각 대응포격에 나섰지만 3문이 고장나고 3문만 정상 작동했다. 1문은 포사격 훈련 중 불발탄이 끼어 사격불능 상태였고, 2문은 자주포 근처에서 북한 포탄이 터지면서 충격에 예민한 사격통제장치의 전자회로에 이상이 생겨 작동 불능상태에 빠졌다.
사정거리 40km에 달하는 K-9은 터키에도 수출되면서 한때 우수성이 부각되면서 명품 국산무기로 칭송이 자자했으나 2009년 이후 잇따라 불량이 발생하고 납품과정에서의 비리가 적발됐다. 2009년 K-9의 탄약 장전 장치를 삼성테크윈에 납품하던 외국계 방산업체가 부품 단가를 최고 4배 이상 부풀려 41억원의 부당이득을 취한 사실이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나기도 했다.
지난해 8월31일 경기도 파주시 국도변에서 훈련을 마치고 부대로 돌아가던 K-9이 조향장치 고장으로 우회전을 시도했지만 차체가 왼쪽으로 기울며 가드레일을 들이받는 사고가 발생했다. 방위사업청은 사고 원인을 조사한 결과, K9 자주포 엔진의 힘을 바퀴에 전달하는 ‘커플링’이라는 이음매에 문제가 있는 것을 밝혀내고 이를 전부 교체하는 한편 전국 26개 부대에 배치된 K9 자주포 부품의 결함 여부를 일제 점검했다.
지난해 9월엔 엔진에 불량 부동액을 써 38문의 K-9 자주포 엔진 실린더 외벽에 구멍이 생긴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기도 했다. 지난 4월엔 K-9 자주포와 여기에 포탄을 공급하는 K-10 탄약운반차의 동력전달장치에 들어가는 핵심 기어 부품이 국방 규격과 다른 재질로 제작된 사실이 감사원 감사에서 적발돼 감사원이 부품 제작사인 S사를 검찰에 수사 의뢰했다.
한편 삼성 경영진단팀은 삼성테크윈 감사에서 K-9 자주포의 기술적인 문제보다는 공장 운영 및 납품 행태에 대해 집중적으로 조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과정에서 일부 직원들이 하도급 및 협력업체 관계자로부터 향응이나 골프 접대를 받았던 사실이 확인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테크윈측은 이번 조치가 K-9 등 방산문제 때문은 아니다라고 했지만 K-9 문제가 경영진단을 촉발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는 것이 중론이다. 방산업계의 한 관계자는 “K-9 자주포가 자주 사고를 내거나 작동이 안 돼 부속품에 하자가 있다는 얘기가 파다했다”며 “부품을 조달하는 과정에서 부정 사례가 불거진 것이 아니겠느냐”고 추측했다.
<김대우 기자@dewkim2>김대우기자dewkim@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