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원호연 기자]북한이 일본 정부가 공인한 납치 피해자를 포함한 일본인 생존자 명단을 일본에 제시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북일 교섭이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북일 정상회담 등 관계 정상화 단계로 들어갈 경우 동북아 정세가 다시 한 번 요동칠 것으로 보인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의 10일 보도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 1일 베이징에서 열린 북ㆍ일 외무성 국장 협의 때 북한에 살아있는 일본인 약 30명의 명단을 일본 측에 제시했다.
닛케이는 이 명단에 일본인 납북자와 납북됐을 가능성이 농후한 ‘특정실종자’의 이름이 포함됐다고 전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 보도를 부인했지만, 일본 정부가 작년 북한과의 비밀협상에 대한 보도가 나올 때마다 부인해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북한이 실제 명단을 제시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지난 4일 북한은 특별조사위원회를 정식 가동해 납치 문제 조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닛케이의 보도가 사실이라면 일본에 조사 결과로 내 놓을 수 있는 결과물을 미리 상당부분 공개한 셈이 된다. 물밑협상이 진행되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 조사결과에서부터 일본 정부가 공인한 납치 피해자 이름들이 포함될 경우 협상은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그동안 북한 내 존재를 부인해왔던 ‘특정 실종자’의 명단까지 전달된다면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북한의 의지를 확인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북일 교섭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는 정황은 또 있다.
스가 장관은 9일 북한이 재조사를 진행하면 이번 여름 말에서 가을 초로 상정하고 있는 첫 조사보고 이전이라도 정부 요원을 파견해 그 결과를 검증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면서 “일본인을 한 명도 남김없이 되찾는 것이 기본 입장으로 1년 이내에 결과물을 내놓겠다“고 공언했다. 명단확보를 가을까지 끝내고 협상을 거쳐 내년 상반기에는 실제 송환까지 끝내겠다는 얘기다.
명단이 확정되면 이들을 일본으로 데려오기 위한 고이즈미 전 총리의 평양방문에 이어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방북과 북일 정상회담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아베 총리가 직접 마주 앉은 자리에서 관계 정상화와 일제 강점기 배상문제를 직접 거론하는 승부수를 던질 것이 확실하다.
정상회담이 실제 북일 수교로 이어질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일본이 독자적으로 북한과 관계 정상화를 시도한 자체로 한ㆍ미ㆍ일 3각 공조가 흔들렸다는 평가가 나올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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