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관계가 다시 꿈틀대고 있다. 아베 정부가 고노 담화 재검증 등 역사문제로 경색됐던 양국관계는 안보 문제를 논의하면서 점차 다시 대화의 물꼬를 트는 형국이다. 지난 20일 비공개로 방한한 후나코시 다케히로(船越健裕) 일본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참사관은 곧 우리 측 외교부 및 국방부 당국자들과 만나 집단 자위권 문제에 대해 설명할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6일 양국 6자회담 수석대표 간 회동에 이어 양국이 어긋난 톱니바퀴를 수선하는 작업에 돌입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짚고 넘어가야 게 있다.
문제는 앞으로 진행할 역사 관련 협의다. 23일 한일 양국은 위안부 관련 논의를 위한 국장급 협의 일정이 잡혔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상은 내달 초 미얀마에서 열리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 외교장관회의 때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만나길 희망한다고 밝혀 두 장관도 안보 문제와 더불어 역사 갈등 해소를 위한 논의도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관건은 일본의 사과와 반성에 기반한 행동을 이끌어 낼 수 있느냐다. 지금까지 외교부는 아베 정부가 일을 벌이면 대변인 성명을 내며 주한 일본 대사나 공사를 초치해 항의하는데 급급했다. 그때마다 일본 측은 “한국의 입장을 본국에 전달하겠다”고 답했지만 변화는 감지되지 않는다.
지금까지 아베 정부는 끈질긴 요구로 일단 우리 정부와 대화의 장을 마련하고 나면 마치 양국 관계가 제 궤도에 오른 양 자국 언론에 홍보한 뒤, 정작 우리가 요구하는 책임있는 조치는 외면해 왔다.
우리 정부가 “대화를 위한 대화’는 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행동으로 보여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같은 뻔뻔함에 있다.
이번에 대화가 재개되면 적어도 고노 담화 재검증과 관련, 외교적 관례를 깨고 우리 정부와의 대화 내용을 일방적으로 공개해 버린 데 대한 사과는 받아내야 한다. 유엔의 시민적정치적권리위원회가 위안부에 대해 ‘성노예’임을 명확히 하고 일본 정부에 법적 책임 인정과 피해자 지원에 나서라고 촉구한 데 대해서도 일본 측의 전향적 태도를 이끌어 내야 한다. 외교 만은 잘 한다고 자부해온 박근혜정부다. 이번에야말로 아베 총리로부터 성의있는 사과를 받아낼 수 있을지 국민은 주시하고 있다.
원호연 정치부 /why37@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