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 시기 소련을 ‘수정주의’로, 중국을 ‘교조주의’로 비판하며 ‘주체사상’의 길을 걸어온 북한이 중국과 또다시 거리두기에 나섰다. ‘전통적 우호관계’로 포장된 북ㆍ중 관계가 실상은 철저히 자국 이익에 따른 관계임이 드러나고 있다.
북한은 21일 국방위원회 정책국 대변인 담화에서 중국을 겨냥, “일부 줏대 없는 나라들도 맹종해 미국의 구린내 나는 꽁무니를 따르면서 저마다 가련한 처지에 이른 박근혜를 껴안아보려고 부질없이 왼심을 쓰고(조바심을 내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 같은 비난은 중국이 지난 17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발사를 규탄한 대언론설명 발표에 동의한 것을 두고 나온 것이다.
북한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의 방한을 앞둔 지난달 28일에도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 논설에서 “대국주의자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는다”며 우회적으로 비판한 바 있다. 중국이 혈맹으로서 북한에 도움을 줬다고 해서 그 지위를 이용해 압력을 행사한다면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각오다.
이달 초 시진핑 국가주석은 중국 최고지도자로서는 이례적으로 평양보다 서울을 먼저 방문해 박근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공동성명에서도 한반도 비핵화 기조를 재확인하며 북한을 압박한 바 있다.
올해 들어 이미 북ㆍ중 관계는 ‘전통적 우호관계’와는 거리가 먼 모습을 보여왔다.
북한은 북ㆍ중 우호조약 체결 기념일인 이달 11일 예년과는 달리 친선을 강조하는 메시지를 발표하지 않았다. 중국 역시 대북 원유 수출을 5월까지 끊는 등 대북 제재에 적극 동참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 대북 전문가는 “북한이 핵ㆍ경제개발 병진노선을 헌법에 천명한 상황에서 핵무기를 포기할 수 없는 반면 중국은 북핵을 해결해야 지역 패권국으로서 입지를 다질 수 있는 상황”이라며 “서로 상충되는 이해관계가 전통적 북ㆍ중 관계를 변화시키는 지점에 와 있다”고 설명했다.
북한의 승부수는 일본을 향해 있다. 일본에서 가장 민감한 정치이슈인 납북자 문제를 매개체로 고이즈미 전 정권 시기 실패했던 북ㆍ일 수교를 다시 시도하고 있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직속으로 재조사위원회를 설치하면서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표출하고 있다. 국제사회의 우려에도 아베 정부가 독자 제재를 해제하면서 이같은 승부수는 일단 효과를 보고 있다.
앞으로 양국 관계 정상화까지 험로가 예상되지만 중국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는다는 제스처를 보이는 것만으로도 중국이 한국에 접근하는 것을 견제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원호연 기자/why37@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