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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훈사령탑 된 전사자의 아들...“보훈은 국가품격”
취임 100일…‘영웅예우’를 말하다
美국립묘지 ‘추모의 벽’ 준공식 참석은
‘일류보훈’ 실현 다짐하는 계기 만들어
독립유공자 가족관계등록 창설 등
국가에 헌신하신 분 자긍심 갖도록
문화·제도로 보훈의 위상 높일 것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은 오는 21일 취임 100일을 앞두고 헤럴드경제와 가진 인터뷰에서 “하루를 일하더라도 떳떳하고 당당한 보훈으로, 국민 가슴에 뿌리내리는 보훈으로, 보훈의 위상을 한 단계 높인 보훈처장으로 남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초심으로 ‘일류보훈’ 실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임세준 기자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제42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 제67회 현충일 추념식, 제77주년 광복절 경축식 등 굵직굵직한 행사의 막전막후에는 항상 박 처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린 6·25전쟁 미군 전사자와 카투사 전사자의 이름을 각인한 ‘추모의 벽’ 준공식에 정부 대표로 참석하기 위해 미국도 찾았다. 헤럴드경제는 오는 21일 취임 100일을 맞는 박 처장을 서울 용산 국가보훈처 서울지방보훈청에서 만났다.

▶폭우 속 美 국립묘지 참배 화제...“일류보훈 다짐”=윤석열 정부 초기 국정운영 지지율이 낮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는 가운데 보훈은 상대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 부문이다. 복합적인 요인이 반영된 평가겠지만 보훈처와 정부의 보훈 정책과 업무에 활력을 불어넣은 박 처장을 빼놓고 설명하기 어렵다.

지난달 워싱턴 D.C. 한국전 참전용사기념공원에서 개최된 추모의 벽 준공식 참석 계기 방미가 일례다. 당시 박 처장은 쏟아지는 폭우를 맞아가며 미 알링턴 국립묘지를 찾아 헌화·참배했는데 큰 화제가 됐다. 그는 “방미 이튿날 6·25전쟁 참전영웅들이 잠들어 계신 알링턴 국립묘지에 갔는데 때마침 폭우가 쏟아졌다”며 “알링턴 묘지에선 폭우가 내리더라도 우산 없이 비를 맞는 게 원칙이라고 하길래 우리나라와 문화가 약간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국가를 위해 헌신한 영웅들을 최고로 예우하려는 자세가 느껴졌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이어 “굵고 거칠게 쏟아지는 비를 온몸에 맞으면서 이름 없는 영웅들의 묘에 헌화하며 우리나라 보훈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이 들었다”며 “영웅을 기억하고 예우하는 모습에서 국가의 품격이 드러난다는 생각이 들면서 다시 한번 국가가 끝까지 책임지는 ‘일류보훈’ 실현을 다짐하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국적의 카투사 전사자 이름이 함께 새겨진 추모의 벽 준공식 역시 미국 내 참전 기념시설 가운데 미 국적이 아닌 전사자 이름이 새겨진 첫 사례라는 점에서 미국에서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윤석열 대통령이 박 처장이 대독한 축하메시지를 보냈으며,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격리로 직접 참석하지 못하게 되자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남편이자 ‘백악관 패밀리’ 일원인 더글러스 엠호프를 보내 성의를 표시했다.

박 처장은 “추모의 벽 준공식이 열린 현지 반응은 매우 뜨거웠다”며 “추모의 벽 건립에 무엇보다 유가족들이 가장 기뻐하셨는데 휠체어를 탄 노병부터 20대 젊은이까지 세대를 초월해 슬픔과 애도를 나눴고 추모의 벽에 새겨진 가족 이름 앞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소개했다. 또 “누구보다 대한민국이 위로하고 감사드려야 할 대상인데 도리어 찾아온 우리에게 몇 번이고 감사를 표해 제가 더 큰 감동을 받았다”며 “이번 미국 출장은 72년 전 대한민국을 지키다 산화한 영웅들의 용기와 헌신에 보답하는 보훈외교의 중요성을 체감하고 더욱 정성을 다해야겠다고 다짐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윤동주 시인과 홍범도 장군 등 직계후손이 없는 무호적 독립유공자들을 대상으로 독립기념관을 등록기준지로 하는 가족관계등록 창설을 정부 직권으로 처음 지정하고, 서울 수유리 한국광복군 합동묘소의 한 봉분에 함께 안장된 광복군 선열 17위의 국립대전현충원 이장도 박 처장 취임 후의 일이다. 그는 광복군 선열 이장과 관련 “광복 77년 만에 비로소 한 분 한 분 예우를 다해 국립묘지로 모심으로써 독립영웅들께 후손된 도리와 국가의 책무를 하게 됐다”며 “일제강점기라는 암흑시대에 죽음을 무릅쓰고 광복군에 투신한 평범한 청년들이 광복의 꿈을 현실로 바꿨는데, 이들의 용기와 신념으로 독립을 이룬 역사가 대한민국의 뿌리이며 역사를 잃으면 뿌리를 잃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보상·지원 넘어 국가정체성 확립 기여하는 보훈 강조=박 처장은 보훈과 관련해 그동안 보훈대상자에 대한 보상·예우 중심의 전통적 역할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선진국 반열에 올라선 대한민국 위상에 걸맞게 패러다임을 전환하고 재설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보훈이 보상과 지원에 그칠 게 아니라 이념과 계층에 관계없이 대한민국이 공유하는 핵심 가치로 자리매김함으로써 국민통합과 국가정체성 확립, 그리고 대한민국 도약에도 기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최근 윤 대통령에게 한 업무보고와 관련해선 “국민통합과 국가정체성 확립을 통해 대한민국 재도약에 기여하는 일류보훈을 목표로 하는 내용을 보고했다”면서 “윤 대통령은 그간 강조해온 ‘제복에 대한 존중’ 차원에서 국민안전을 위해 헌신한 경찰과 소방관을 대상으로 국립묘지 안장을 확대하라며 미래세대가 올바른 국가 정체성을 가질 수 있도록 보훈교육을 활성화하라고 당부했다”고 전했다.

박 처장의 보훈에 대한 남다른 열정과 애정, 철학의 뿌리는 자신부터가 ‘원호대상자’였다는 데서 기인한다. 박 처장의 부친 고(故) 박순유 중령은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박 처장이 일곱 살이었던 1972년 6월 전사했다. 부친은 일제강점기 경남 거창 신원초등학교 동맹휴학사건으로 구속되기도 했으며 베트남전을 앞두고 미 첩보부대에서 교육을 받기도 했다. 부친의 전사 뒤 ‘월남댁’이란 별명을 얻게 된 어머니가 홀로 6남매를 어렵게 키웠다고 한다.

박 처장은 베트남전 전사자의 아들로 국가로부터 지원받았지만 그닥 ‘아름다운 기억’은 아니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보훈처가 1980년대 중반까지는 원호처였고 제가 원호대상자였는데 ‘원호’라는 말 자체가 돕고 보살핀다는 의미이고 못 사는 사람을 구제해준다는 의미”라며 “물론 나라에 고마운 마음은 있었지만 한 것도 없이 공짜로 도움 받는다는 느낌이 들어 떳떳하지 못하고 창피했다”고 당시의 기억을 떠올렸다. 또 “보훈은 국가가 국가유공자들에게 당연한 고마움을 보상과 예우 형태로 표시하는 것”이라면서 국가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신 분들에게 자긍심을 느낄 수 있는 문화와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실제 보훈처는 1061년 8월 군사원호청이란 이름으로 창설돼 이듬해 원호처로 명칭이 바뀌었다가 1985년에야 현재 이름을 갖게 됐다.

특히 박 처장은 “일제강점기와 군사독재정권을 거치면서 군인과 경찰 등 제복에 대해 안 좋게 생각하고 비하하는 문화가 있고, 6·25전쟁 참전용사나 이런 얘기를 하면 꼰대라고 생각하는 분위기도 있는 게 사실”이라며 “그런데 전차, 함정, 전투기 만들고 반도체, 자동차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하는데 이보다 훨씬 중요한 게 나라에 대한 자부심과 나라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한 분들을 끝까지 책임지는 일류보훈의 전통”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어 “이런 보훈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나름 사명감을 갖고 있다”고 했다.

▶ “광복회 회계부정·권한남용 등 상당히 유감”=박 처장 취임 후 보훈처가 관리·감독하는 독립유공자 후손단체인 광복회에 대해 고강도 감사에 나선 것도 이 같은 인식의 연장선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박 처장은 광복회 감사와 관련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곳이나 마찬가지인 광복회에서 이런 일들이 발생한 것에 대해 보훈단체 관리·감독 주무관청 장으로서 상당히 유감스럽다”며 “수익사업과 보조금, 단체운영은 물론 그동안 제기된 회계부정과 권한남용 등 각종 비리까지 광복회 전반에 대한 감사를 한달여 실시한 후 최근 감사가 종료됐는데 그 결과에 따라 엄정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박 처장은 보훈처의 업무 분야인 독립, 호국, 민주 가운데 호국과 민주가 이념과 진영에 따라 간혹 논란이 되는 것과 달리 독립은 모든 국민이 공감하는 최고의 가치인데 독립의 대표기관인 광복회의 위상 회복을 위해서도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보였다.

박 처장은 광복회 뿐 아니라 그동안 일부 문제가 발생해도 예우 차원에서 덮곤 했던 보훈단체 전반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는 “보훈단체에 소속된 분들은 마땅히 예우받아야 하는 분들이지만 공과 사는 명확해야 한다”면서 “앞으로 관리·감독을 명확히 하고 확실한 제재수단을 마련하기 위한 관련법을 개정해 추진하겠다”고 했다.

박 처장은 취임 100일을 맞는 감회에 대해서는 “보훈 현장을 찾을 때마다 보훈의 중요성과 나아갈 방향에 대해 많은 말씀과 당부를 듣고 있고 더 각오를 다지게 된다”며 “베트남전 전사자의 아들로서 국가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이 자긍심을 갖고 살 수 있도록 문화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오랜 소명이었고 책임감으로 임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단 하루를 일하더라도 떳떳하고 당당한 보훈으로, 국민들의 가슴에 문화로서 뿌리내리는 보훈으로, 보훈의 위상을 한 단계 높인 보훈처장으로 남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신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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