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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재진행형’ 공포…日도 일본인 삶도 송두리째 바꿨다
강진·쓰나미·방사능…

열도 전체가 암울 충격

시민의식도 곳곳 균열

사재기·약탈사건 잇따라


영토분쟁·과거사갈등 韓·中

구조대 파견 등 관계 진일보


일본 동북부를 강타한 대지진이 발생한 지 보름. 일본도 일본인의 삶도 바뀌었다. 재앙은 혼자 오지 않았다. 전 세계 지진 관측 역사상 네 번째로 강한 규모 9.0의 강진은 15 m가 넘는 쓰나미를 동반했다. 여기에 원폭 투하로 핵공포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일본인들에게 후쿠시마 현 제1 원자력 발전소 폭발사고는 애써 차분했던 열도를 방사능 공포로 몰아 넣었다. 게다가 수돗물에 채소 등 먹을거리 오염까지 대지진 공포는 현재진행형이다. 

이번 대지진은 많은 것을 바꾸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차분했던 일본인들의 삶도 균형을 잃었고 세계가 찬사했던 시민의식도 조금씩 균열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보여줬던 대재앙 앞에서의 의연함과 연대의식은 일본에 대한 한국과 중국의 양국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바꾸는 등 새로운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일본인 삶 바꿨다=40만명에 달하는 피해지역 이재민들은 가족을 잃은 슬픔과 삶의 터전을 잃은 절망감에 망연자실했다. 피난소에서는 의료품이 제때 공급되지 않아 2차 사망자가 속출하기도 했다. 계획정전으로 수도권은 어둠에 휩싸였고 주말에도 백화점은 한산했다.

 일본 경찰청이 24일 오후 11시 현재 공식 집계한 인명 피해는 사망자 9811명을 포함해 2만7000여명에 이른다. 이는 1995년 6000여명의 목숨을 앗아갔던 한신대지진을 능가하는 수치다. 피해액도 최대 25조엔으로 한신대지진의 2.5배에 달한다.

설상가상으로 지난 11일 발생한 원전폭발 사고는 ‘방사능 먹을거리’ 공포로 확산됐다. 원전 인근 지역의 우유와 채소에서 방사성 물질이 검출되더니 급기야 23일에는 후쿠시마에서 240㎞ 떨어진 도쿄의 수돗물에서 방사성 요오드가 기준치 이상 검출됐다.

방사능 공포는 동북부 지방의 이재민뿐만 아니라 열도 전체를 피난민 행렬로 만들었다. 관동지역 일본인들은 아이들 손을 잡고 오사카ㆍ쿄토 등 서쪽으로 피난을 서두르고 있다. 도쿄에 거주하는 사이토 타마미(38) 씨는 24일 친가가 있는 오사카로 피신왔다. 그는 “아이들 건강이 달린 문제라 어쩔 수 없다”며 남편은 일 때문에 도쿄에 남았다고 말했다.

▶숙명론 바뀌나=일본 속담에는 “물에 흘려보낸다(水に 流す)”는 말이 있다. 시간이 흐르면 모두 버리는 것이다. 이는 일본인들이 과거를 잊는 방법이다. 그들은 현재의 상황에 순응하고 함께 있는 사람들과 현재의 질서 속에 살아간다. 이른바 숙명론인 셈이다.

하지만 보름 동안 쉴새없이 계속되는 충격 속에 일본 시민들도 인내에 한계를 드러냈다. 생수 등 식자재 사재기가 기승을 부렸고 곳곳에서 약탈사건도 잇달았다. 최대 피해지역인 미야기 현 센다이 시의 편의점 약탈 등 200여건이 넘는 절도 행위가 나타났다. 현금 인출기를 파손한 흔적도 발견됐다.

그러나 25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일본의 깨어진 거울’이라는 특집에서 “지난 2주간 일본 전역에서 인내는 계속됐다”고 평가했다. 신문은 “일본의 숙명론은 과거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 약점이자 미래를 지향한다는 강점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하면서 “이번 재앙으로 일본은 붕괴된 것도 재건될 수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WSJ은 자위대의 신속 배치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원전 작업원들의 노력이 일본의 이미지를 향상시키고 일본이라는 국가에 대한 신뢰감을 회복시키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어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시민들의 성숙한 행동이라고 강조했다. 일본인들은 자기 자신과 가족에 깊은 책임감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모든 일본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며 이것은 곧 일본의 선입관을 깨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동북아 대일관계도 바뀐다=한국 정부는 일본에 대지진 피해가 발생하자 가장 먼저 구조대를 보냈다. 철수도 마지막이었다. 한국인들 사이에서는 트위터 등을 통해 일본을 돕자는 움직임이 번졌고 국내 모금 5일 만에 100억원을 돌파했다. 반일 감정이 거셌던 중국인들도 84%가 “일본을 돕자”고 응답했고 중국 정부는 구호활동을 지원했다.

WSJ은 “한국과 중국이 처음으로 일본에 구조대를 파견했다”며 “이는 그동안 영토분쟁과 과거사 문제로 갈등을 빚어왔던 일본과의 관계를 확실히 진전시키는 역할을 할 것이다”고 평가했다.

또 “이번 사태를 수습하는 데 있어서 일본 정부가 1995년 고베대지진 때와는 달리 다른 나라의 도움을 받는 데 배타적이지 않다는 것은 국가의 자존심에 덜 민감하다는 증거”라며 이러한 일본의 변화된 자세는 혼란을 이기고 더 강해질 수 있는 근거가 된다고 신문은 전했다. 

천예선 기자/che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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