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은혜 코트라 베이징KBC 과장
개발도상국의 성장 엔진 가운데 으뜸은 노동력이다. 1970년대 한강의 기적을 이룬 한국이 그랬고, 1990년대 이후 중국에선 그 전형을 보게 된다. 한중 수교(1992)와 함께 봇물이 터진 우리 제조업의 중국행도 값싼 노동력 덕분이었다. 13억 인구가 뒷받침된 덕에 노동력은 무한 공급될 것처럼 보였다. 숙식만 해결해줘도 일하겠다는 사람들이 끝없이 모여들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 풍경이 달라졌다. 주요 산업도시의 역 광장과 시외버스 대합실에는 인근 공장에서 부족한 일손을 급구하는 구인광고가 나붙기 시작했다. 일손 부족현상은 중국 최대 명절인 ‘춘지에(春節)’ 직후에 더욱 두드러졌다. 고향에서 설을 쇤 노동자들이 단돈 100위안이라도 더 주는 공장을 찾아 나선 탓이다.
지금은 웬만한 임금으로는 일선 생산직 근로자 확보 자체가 어려워졌다. 중국 IT산업의 메카인 광둥성 둥관(東莞)시에서만 100만명의 인력이 부족하다. 인근 주강삼각주까지 범위를 넓히면 200만명이 부족해 기업들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인력난은 해안을 타고 화동 및 화북지역으로 번지고 있다. 스촨(四川), 후베이(湖北), 안후이(安徽)성 등 전통적인 노동력 공급지였던 내륙도시도 결코 일손이 남아돈다고 할 수 없는 상황이다. 표준 최저임금이 지난해 전국적으로 평균 20% 이상 인상됐고 지금도 임금 인상 릴레이가 계속되고 있지만 구인난이 해소될 기미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 저변에는 ‘신생대(新生代) 농민공(農民工)’이라는 구조적 특성이 자리 잡고 있다. 농민공이란 농촌 호적을 유지한 채 도시 공장에 와서 일하는 사람이다. 이 가운데 신생대 농민공은 1980년대 이후 출생한 16세 이상 인구를 가리킨다. 신생대 농민공 수는 약 1억명으로 중국 전체 농민공(2억4000만명)의 40% 이상을 차지한다. 이들은 수적으로도 많지만 아버지 세대의 농민공과는 가치관이 다르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고향을 떠나 일하는 사람들의 직업선택 목적을 보자. 중국전국총공회 자료에 따르면 1960년대까지 출생한 농민공 세대는 돈 벌기 위함이 76%로 압도적이다. 반면 1980년대 이후 출생한 신생대 농민공들은 70% 이상이 자아실현과 바깥세계 체험, 기술습득 등을 직업의 의미로 꼽는다.
신생대 농민공은 고용보장 보다는 복지혜택, 자기계발, 작업환경 개선 등을 다양하고 폭넓게 원한다. 나아가 자신을 농민이라고 생각하는 비율이 과거엔 50%를 넘어서지만 신생대 농민공에선 30% 수준에 불과하다. 칭화대학의 한 조사를 보면 10년 전만 해도 농민공들은 90%가 몇 년 일한 후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지금은 이 비율이 10%대로 뚝 떨어졌다. 대부분 도시에 정착하겠다는 얘기다.
지금 중국 생산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력부족 현상은 임금 수준 때문만은 아니다. 일하는 사람의 생각이 바뀐 것이다. 기업들은 해마다 껑충껑충 뛰는 임금 탓에 시름이 깊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바로 신생대 농민공과의 관계 설정이다.
어떻게 하면 잦은 이직을 막을가, 어떻게 하면 자발적으로 동기유발을 이끌어낼까, 나아가 어떻게 하면 회사와 직원이 조화를 이룰 것인가, 이런 고민이 필요하다. 이 삼박자가 맞아 들어가야만 인력확보는 물론 기업의 생존까지 담보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