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개정 노동법은 악법”
타임오프 거부 움직임
초반 기선잡기 투쟁강조
“법과 원칙 지키겠다”
전임자 전원 무급휴직 처리
사측도 강경입장 고수
파국땐 양측 모두 상처뿐
노사 협상여부 이목집중
국내 최대 단일사업장인 현대자동차 노사가 근로시간면제제도(타임오프) 시행을 놓고 힘겨루기를 하면서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또 타임오프 외에 임금 및 단체협상, 복수노조 허용, 지부장 선거 등 굵직굵직한 현안을 앞둔 상황에서 초반 기선을 제압하기 위한 강경 입장을 고수할 수밖에 없어 짙은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전운 감도는 현대차=현대차 사측은 지난 1일 노조 간부, 선거관리위원, 교섭위원, 교육위원, 회계감사 담당, 상급단체 파견 대의원 등 총 233명의 노조 전임자 전원에게 무급휴직 발령을 냈다. 노조가 타임오프 시행 전까지 유급 전임자 명단을 확정해 사측에 넘겨야 하는데 타임오프 자체를 거부하고 있는 노조가 이를 이행하지 않은 데 따른 조치다.
작년 초 개정된 노동관계법에 따라 현대차는 기존 단체협약 효력이 사라진 이달 1일부터 유급 전임자 수를 이전 233명에서 24명(현대모비스 포함 27명)으로 줄여야 한다. 노사 합의가 이뤄질 경우 노조가 임금을 부담하는 무급 전임자도 일부 둘 수 있다. 하지만 이전 수준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해 상당수 전임자를 현장으로 복귀시켜야만 하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금속노조 현대차 지부는 개정 노동관계법을 악법으로 규정하면서 사측이 기존 전임자 전원을 유급으로 인정해줄 것을 요구하며 버티고 있다.
사측은 타임오프제 관련 협상을 시작하면서 노조에 4월 1일부터 법과 규정에 따라 전임자 수를 줄여줄 것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 또 지난 1일에는 현장에 복귀하지 않은 233명 전원에 대해 무급휴직 발령을 내면서 “법과 원칙을 지키겠다”는 입장을 버리지 않고 있다.
▶첩첩산중 노사현안 전초전=현대차 노조는 타임오프 협상을 앞둔 올해를 “24년 노조 역사 상 가장 힘겨운 한 해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타임오프에 대해서는 “정부와 사측이 노조를 무력화하기 위한 제도인 만큼 4만5000명 조합원이 한데 뭉쳐 투쟁으로 맞서겠다”고 강조했다.
반면 사측도 물러서지 않을 것임을 강조했다. 윤여철 현대차그룹 부회장은 최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회사가 법과 원칙을 어길 수는 없다”면서 “지난해 기아차와 마찬가지로 현대차도 법에 따라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현대차 노사가 타임오프제 시행을 놓고 양보 없는 대결 양상을 전개하고 있는 것은 올해 줄줄이 놓인 현안을 앞두고 첫 싸움에 밀려서는 안 된다는 절박함이 배경으로 자리잡고 있다.
현대차는 임금협상 외에 2년마다 돌아오는 단체협상을 올해 진행해야 한다. 7월에는 단일 사업장 내 복수노조 설립이 전격 허용되고 9월에는 지부장 선거도 예정돼 있다. 현 노조 집행부 입장에서는 강력한 투쟁을 통해 현장 조합원들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는 결과물을 얻어내지 않으면 올 하반기 지부장 선거에서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워진다.
사측도 절박하기는 마찬가지다. 지난해 갖은 어려움을 뚫고 기아차가 법과 원칙에 맞춰 타임오프제를 시행한 마당에 현대차가 이를 따르지 않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결국 노사 모두에게 힘겨운 국면이 전개되고 있는 셈이다.
▶법 테두리 내 협상이 해법 “파국은 막아라”=그렇다고 해서 현대차 노사가 협상을 거부하고 극단적인 파국을 맞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협상을 배제할 경우 사태를 해결할 방안이 없고, 이는 노사 양측에 엄청난 부담을 줄 것이라는 사실을 서로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노조는 합법적인 절차를 밟아 특근ㆍ잔업거부나 전면 파업으로 갈 수도 있다. 급박하면 한국노총 등 상급단체와 연대해 전면전을 펼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이달부터는 당장 법적으로 정해진 24명 이외의 전임자에 대해서는 노조가 임금을 부담해야 한다는 점이 걸림돌이다. 매달 10억원 가까운 비용을 노조가 책임져야 하는 마당에 마냥 협상을 미룰 수는 없는 것이다.
사측도 사정은 비슷하다. 국내외 시장에서 현대차가 상승세를 타고 있는 상황에서 노조의 연장근무 거부나 파업으로 인해 생산차질이 빚어지면 만만치 않은 손실이 불가피하다.
현대차 관계자는 “어차피 법대로 해결될 수밖에 없는 타임오프제 시행을 두고 노사가 다툼을 벌이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서 “협상을 통한 해결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 공은 노조에 돌아간 셈이다.
이충희 기자/hamlet@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