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英서 첫 대면 후 신성장 동력 예감…포기론 쏟아져도 “길게 봐라” 뚝심의 리더십 결실
충북 오창에서 6일 열린 LG화학의 전기자동차용 배터리공장 준공식 행사장.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입가엔 흐뭇한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이날 준공식은 구 회장에겐 남다른 소회로 다가왔다. 도전정신 하나로 2차전지를 글로벌 최강 반열로 올렸다는,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했다는 뿌듯함에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구 회장의 2차전지 배터리와 전기차 사랑은 너무도 유명하다. 그의 짝사랑(?)은 무려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1992년 당시 구 부회장은 영국 원자력연구원(AEA)에 들렀다가, 한 번 쓰고 버리는 건전지가 아니라 충전을 하면 여러번 반복해 사용이 가능한 2차전지를 처음 목도했다. 심장이 뛰었다. “이거다” 싶었다. 2차전지가 미래 신성장동력이라는 것을 단박에 알아차렸다. 귀국길에 2차전지 샘플을 가져와 당시 계열사였던 럭키금속에 연구하도록 했다. LG화학이 부동의 2차전지 최강자가 된 것은 20년 전의 이 일화가 뿌리가 됐다.
2001년 11월 여의도 LG트윈타워 회의실에선 이 같은 비판이 절정 분위기에 달했다. LG화학의 2차전지 사업이 집중적인 성토 대상이 됐다. 몇몇 계열사 최고경영자는 “다른 세계적 기업들은 전자회사들이 개발하고 있는데, 우리는 LG화학이 이 사업을 하는 것이 과연 맞느냐”며 포기론을 쏟아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구 회장은 단호하게 정리했다. “포기하지 말고 길게 봐라. 투자와 연구개발에 더욱 집중하라. 그동안 전지사업을 추진해 오며 쌓은 노하우도 있다. 꼭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다시 시작하라.”
이후 LG화학 2차전지 사업은 숱한 위기에도 오뚝이처럼 일어나 지금은 전기차용 배터리 부문에서 GM, 포드, 르노, 현대기아차 등에 장기 공급계약을 맺으며 명실상부한 세계 최강자로 올라섰다. 구 회장의 전지사업 육성에 대한 인내와 뚝심의 리더십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구 회장은 애틋하고 대견하다는 눈길을 공장에 몇 번이고 던지면서 행사장을 떠났다. 그는 속으론 이렇게 되뇌었는지 모른다. “남들은 미운오리새끼라고 했지만, 백조라고 확신했던 게 옳았어”라고. 김영상 기자/ysk@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