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결산법인 상장사 주총이 마무리된 지난 주 박병엽 팬택 부회장의 ’부활’ 소식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도하 신문들도 ’불굴신화 팬택호, 새로운 50년을 꿈꾼다’, ’7전8기 오뚜기 DNA’ ’워크아웃 속 14분기 연속 흑자 신화’, ’와신상담 5년, 기적의 회생’, ’마부위침 끝에 권토중래’, ’졸면 죽는다, 이 악문 부활’ 등으로 대서특필했다.
1991년에 출범한 팬택은 지난 2006년 말 무리한 사업확장으로 기업개선작업(워크 아웃)에 들어갔지만 이례적으로 퇴출 오너인 박 부회장을 CEO로 영입,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지난해 매출 2조77억원, 영업이익 840억원이라는 눈부신 성과를 일궈내 금년 말 워크아웃 해제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금년 3조원, 2015년 10조원 매출 목표도 무리가 아닐 듯하다.
박병엽 ’부활’의 일차적 의미는 물론 불명예 퇴진 기업인의 생환이다. 5년 전 매출 4조원, 세계 7위 휴대전화 제조업체 CEO라는 정점에서 4500억원의 회사 지분을 과감히 포기, 빈털털이가 됐던 그가 절치부심 끝에 팬택을 정상화 반열에 올려 놓았기 때문이다. 퇴출 12년 만에 애플에 복귀해 옛 영광을 재현한 스티브 잡스 신드롬에 손색이 없다.
여기에 핸드폰을 만드는 글로벌 첨단 제조업체라는 사실이 대견하다. 금융 건설 유통 게임 등 서비스 업종에선 간혹 조 단위 매출을 올리는 신생 기업이 없지 않으나 제조 분야에선 흔치 않다. 그것도 삼성전자 LG전자 노키아 모토로라 등 세계적 기업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는 점에서 팬택과 박 부회장은 찬사를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팬택의 패자 부활은 또한 집중적인 연구개발(R&D) 투자가 성장의 버팀목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새삼 일깨운다. 전체 인력의 60% 이상을 연구인력으로 충원하고 워크아웃 여건에서도 무려 1조원(올해엔 2600억원)을 투자한 결단이 오늘의 팬택을 있게 했다. 미국의 세계적 통신회사 AT&A 거래업체 가운데 내로라 하는 글로벌 기업을 제치고 기술과 품질 면에서 3년 연속 1위에 선정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새로운 것에 과감하게 도전하는 기업가 정신은 현대그룹의 아산 정주영 명예회장을 닮았다. 자살 언저리까지 갔던 박 부회장이 휴대폰에 관한한 스티브 잡스를 뛰어넘겠다는 도전 정신으로 재기한 모습에서 한국 경제의 미래를 읽을 수 있다. 실제 올해 휴대폰 1500만대(스마트폰 300만대) 생산 계획은 모바일 디바이스의 세계적 강자 등극을 예고한다. 1년 365일 토ㆍ일요일 없는 팬택 직원들의 열정과 회사 경영 내용을 모든 구성원이 공유하도록 하는 그의 소통 전략도 본받을 만하다.
또 하나 장점은 젊다는 점이다. 산업 재편ㆍ패러다임 변화ㆍ경쟁 격화 등 속도를 가늠하기 어려운 디지털 시대에 팬택은 빠른 의사결정으로 지난 ’20년’을 견뎌냈다. 그만큼 내공이 쌓였다고 봐야 한다. 정 명예회장이 55세에 조선소 창업을 구상, 지금의 현대중공업을 세계 제일의 조선소로 키운 전례에 비추어 현재 40대인 박 부회장과 청년기에 접어든 팬택의 성공 가능성은 무한하다.
박병엽 ’부활’은 제2, 제3의 박병엽 출현의 서곡이다. 그 시기를 앞당기려면 벤처기업에 대한 창업자금과 연구인력을 원활하게 공급할 제도적 정비가 시급하다. 늦게나마 과학 입국의 불씨를 되살릴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출범은 다행이나 부처 이기주의나 탁상공론에 그쳐서는 안 된다.
협력업체라는 울타리에 가둬 놓고 인재와 기술을 빼앗는 일부 대기업 횡포는 반드시 뿌리뽑아야 할 것이다. 미래를 꿰뚫는 시대적 통찰력, 혁신과 창의성을 겸비한 박 부회장의 기업가 정신이 제대로 어우러진다면 팬택은 분명 애플, 구글, 퀄컴도 충분히 뛰어넘을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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