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부터 뒤죽박죽 대혼돈이다. 정부의 고강도 압박에 정유사들이 7일 0시부터 부랴부랴 휘발유와 경유 가격을 내렸지만 가격 인하에 대비한 충분한 사전 준비가 안돼 이날 새벽부터 큰 혼란이 빚어졌다.
주유소 및 고객들에 대한 정보 제공도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7일부로 SK에너지,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4대 정유사가 모두 휘발유 및 경유 가격을 ℓ당 100원 내리기로 했지만 이를 반영하지 않은 주유소들이 태반이었다.
주유소마다 가격 인하 여부가 뒤죽박죽인 상황에서 일부 소비자들의 기대는 실망감으로 바뀌었다. 정유사 및 주유소들은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이다. 반 시장적인 가격 조정이 초래한 예견된 결과다. 특히 3개월 한시 인하 기간이 끝나는 7월 첫날에는 또 어떤 혼란이 빚어질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첫날부터 소비자들은 어리둥절했다. 상당수 주유소들이 가격을 내리지 않거나 찔끔 떨어뜨렸을 뿐이다. 실제로 헤럴드경제 취재진이 서울 및 수도권의 주유소 10여곳의 가격변동 여부를 확인한 결과, 절반 이상의 주유소가 인하폭을 제대로 적용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서초역 부근의 한 주유소는 휘발유 가격을 2096원에서 2078원으로 고작 18원 내렸다. 사당역 인근의 한 주유소에서도 휘발유 가격을 1946원에서 1885원으로 61원 인하하는데 그쳤다. 아예 가격을 단 한푼도 내리지 않은 주유소도 있었다.
그나마 직영주유소들만이 온전히 100원 인하폭을 반영했다. 대다수 소비자들이 가격 인하의 혜택을 제대로 누리지 못한 셈이다.
주유소마다 혜택이 다르다는 점을 미처 인지하지 못한 소비자들은 불만투성이다. 기름값 인하 사실이 대대적으로 발표되면서 대다수의 운전자들은 기대감을 안고 7일 이후로 주유를 미뤘다. 하지만 막상 당일에도 100원의 할인폭을 적용받지 못한 소비자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반면 100원의 인하폭을 고스란히 적용한 주유소의 경우 출근길 기름을 넣으려는 운전자들로 북적였다.
주유소 운영자들은 “소비자들의 불만은 잘 알지만 어쩔 수 없다”고 항변한다. 가격 인하 전의 재고분이 그대로 남아 있는 상황에서 손해를 보면서 가격을 내릴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일부 주유소의 경우 본사로부터 아직도 가격 인하 고지를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급하게 가격 인하를 결정한 와중에 드러난 준비 부족이었다.
다른 정유사와 달리 현금으로 결제하면 즉석에서 적립카드에 ℓ당 100원의 금액을 적립해주거나 신용카드로 결제시 결제일에 100원을 차감해 주는 방식을 택한 SK에너지의 주유소와 이를 이용하는 고객들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
SK에너지 소속 주유소 중 상당수는 가격 인하를 알리는 아무런 표시도 하지 않았다. 한 주유소 관계자는 “회사(SK) 측에서 가격 인하 혜택을 알리는 현수막과 전단지를 제공한다는 통보를 받았다”며 “표시 가격 자체는 그대로이기 때문에 특별히 가격표를 바꿀 수도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여기에 신용카드 결제 차감이 법인카드에는 적용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주유소 측이나 법인카드 이용 고객도 혼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이 같은 난맥상이 당분간 지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일부 주유소의 경우 재고분이 소진되려면 한 달 이상 걸려 최장 한 달이나 가격을 내리지 않는 주유소들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같은 폴의 주유소에서도 가격이 천차만별이라 소비자들의 혼란은 가중될 것으로 우려된다.
한 주유업계 관계자는 “정유사들이 정부 압박에 기름값 인하 결정을 앞다퉈 발표했지만, 제도 시행을 위한 준비가 미비한 상황”이라며 “이에 따른 혼란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알 수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한편 7일 오피넷(www.opinet.co.kr)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 현재 보통휘발유 평균가격은 1967.53원을 기록해 전날보다 3.39원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지난 6일에는 1970.92원을 나타내며 178일 연속 상승세를 마감한 바 있다.
상당수 주유소들이 100원의 가격 인하폭을 반영하지 않은데다 신용카드 결제시 결제일에 100원을 차감하는 SK에너지의 경우 오피넷에는 기존의 가격대로 나타내기 때문이다. 경유가격도 1797.89원을 나타내며 6일보다 3.73원 내려갔다.
한국석유공사 관계자는 “SK에너지의 경우 직접적인 가격 인하 방식이 아니기 때문에 오피넷에서는 기존의 가격이 반영된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주유소를 보유한 SK에너지 주유소의 가격이 오피넷 상에서는 인하 이전의 가격으로 제시되고 있다는 것이다.
하남현 기자/airinsa@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