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명품무기의 자존심으로 꼽히는 K-2 흑표 전차는 핵심부품인 파워팩(엔진+변속기+냉각장치)의 결함으로 전력화 시기가 2013년으로 또 1년 늦춰졌다. 이로 인해 터키수출 마저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국방과학연구소(ADD)가 개발한 K-11복합소총 역시 시험평가때마다 결함이 드러나는 통헤 실전배치에 차질을 빚고 있다. 세계 최고라고 선전했던 K-21 전투장갑차는 잇단 침수사고로 부사관 1명이 숨지면서 성능보완을 거쳐야 했고 재차 전력화 재개 여부 결정을 앞두고 있다. 윤영하급 유도탄고속함은 고속 항해할 때 갈지(之)자로 운행하는 결함이 발견됐고, K-9 자주포는 엔진결함으로 무용지물이 되기도 했다. 이같은 명품무기의 부실은 방산 선진국 도약을 꿈꿨던 방산업계에 비상등이 켜지게 만들었고, 우리 군의 전투력에도 커다란 구멍을 노출했다.
▶무기개발체계 구조적 문제=정부가 자랑하던 명품무기들이 잇달아 부실의 나락에 빠진 것은 국내 무기개발체계가 설계에서부터 시험평가, 점검관리에 이르기까지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음을 방증한다. 전문가들은 ▷군 당국의 과도하게 높은 성능조건(ROC) 요구 ▷취약한 국내 국방과학기술 연구개발(R&D) 여건 ▷짧은 개발 기간 ▷적은 예산으로 인한 시제품 부족 등을 문제점으로 들었다.
먼저 군이 우리 기술능력에 비해 과도하게 높은 성능조건(ROC)을 요구해 무기획득 단가가 올라가고 개발기간이 장기화되고 있다. TV보는데는 PDP든 LED든 문제가 없는데 유독 최고기술인 3D시청이 가능한 TV만 고집하는 식이다. 군은 기술적으로 25t 이상되는 장비의 수상 운행이 제한되는 데도 26t 규모인 K-21 장갑차를 수상 운행이 가능한 최고수준의 사양으로 개발해 K-200 장갑차보다 단가가 6배나 올라가는 결과를 초래했고 부실 설계로 결함을 노출했다. 논란이 되고 있는 K-2 흑표전차의 파워팩 문제도 마찬가지. 기계공학 최강국 중 하나인 독일은 흑표전차와 동일한 1500마력의 파워팩을 개발하는데 13년이 걸렸지만 우리는 3년만에 개발키로 하는 등 핵심기술과 체계 개발을 동시에 추진, 결함과 차질을 자초했다.
박창규 ADD 소장은 “(K계열 무기들이 문제를 빚는 것은) 군에서 기술능력에 비해 과도한 성능조건을 요구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ADD와 국방기술품질원이 방위사업청의 통제를 받는 현 시스템 하에서는 기술수준을 고려해 소요를 기획하는 데 한계가 있다. 일각에서는 “무기를 수입하기 위해 ADD가 군 소요제기에 맞는 기술을 개발하지 못할 정도로 과도하게 요구성능을 설정하기도 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또 취약한 국방과학기술 R&D 여건 역시 명품무기 개발에 걸림돌이다. 우리의 국방과학기술 중 핵심ㆍ원천기술은 미국이나 영국 등 선진국 대비 78% 수준에 불과하다. 흑표전차 개발에서 문제가 된 파워팩의 경우 미국, 영국조차 개발에 실패하고 엔진 설계로 유명한 독일만이 유일하게 보유하고 있는 첨단 기술이다.
개발기간을 무리하게 단축시키는 행태도 무기 결함을 촉발시켰다는 지적이다. 자동차의 새 동력장치를 제작하는 데도 5년은 걸리는데 2000㏄급 중형 승용차의 10배가 1500마력이 넘는 파워팩의 애초 개발기간이 3년에 불과했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군 내부적으로 명품무기라는 슬로건에 집착한 나머지 과도한 성과주의에 집착하고 있다”며 “개발기간을 무리하게 단축시켜 시험ㆍ운용평가에서 문제점이 한꺼번에 터져나오는 것도 그런 이유”라고 말했다. 결함 여부를 테스트하기 위한 시제품 수가 턱없이 부족하다. 방사청의 한 관계자는 “무기개발에 따른 예산 부족으로 시제품을 적게 만들 수 밖에 없다”며 “미국은 무기 하나를 개발 테스트하기 위해 시제품을 무려 100여 대까지 만들기도 하지만 우리나라 K-21 시제품은 단 2대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대부분의 국가들이 무기를 개발한 뒤 결함을 고쳐나가는 방식을 택하고 있으나 이제는 연구개발 기간을 좀 늘려서라도 철저한 시험평가 등을 통해 안전성을 확보하는 등 군의 무기개발 및 운용체계의 전반적 개선이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무조건 국산화가 정답 아니다=100% 국산화를 달성하면 최선이겠지만 고집할 게 아니다. 100% 국산화와 수출에 너무 얽매여 서두르다가 자칫 결함을 초래할 수도 있다. 막대한 개발비용과 기술력이 뒷받침돼야 하는 첨단무기를 모두 우리 손으로 만들 필요가 있는지는 한번 따져봐야 한다. 정부는 K 계열 신무기체계를 개발하면서 많은 돈이 필요하자 나중에 해외에 팔아 충당할 수 있다고 얘기해 왔다. 그러나 재래식 무기 수출 시장은 미국·러시아·독일·프랑스·영국 5개국이 거의 독차지하고 있다. 2009년 579억달러 규모 세계 무기시장에서 한국의 방산 수출은 11억7000만달러로 2%밖에 안 된다. 전문가들은 “모든 무기를 다 국산화하려 하고, 게다가 전력화 일정도 너무 서두르는데 국산화 품목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명품무기 개발을 위해 방위사업청 국방과학연구소 국방기술품질원 육군시험평가단 등 관련 기관의 업무 협조도 강화돼야 한다. 방사청이 담당하고 있는 무기개발 과정을 전체적으로 총괄할 제3의 기관을 설립하는 문제도 적극 검토할 때다. 국방과학연구소가 지금처럼 무기개발의 기획·개발·평가를 모두 하는 것은 자기가 시험문제를 내고 자기가 채점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구조 등 무기개발체계 과정을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껍데기만 국산’ 무기 양산=외국에서 방위산업 부품을 구매해 단순 조립을 거치면 국산품으로 인정해주는 방위산업청의 ‘국산화율 인증기준’ 제도로 겉만 국산이고 부품은 외국산으로 채워진 ‘무늬만 국산’인 무기들이 양산되고 있는 것도 문제다.
국산화율 70% 인증시 자체제조 30%와 국내 구매 40%를 적용하는 현행 국산화율 공식은 수입부품이 단순조립의 형식을 거쳐 국내구매품으로 둔갑한다. 무기체계의 국산화율 상승을 목적으로 국내개발을 높이기 위해 마련된 ‘국산화율 70%’ 기준이 되레 부품 수입만 부추기고 있어 국산화 인증제도의 대수술이 필요하다.
수출명품 155㎜ K9 자주포를 만들고 있는 S사의 국산화율은 80%지만 구매품인 발사실린더가 국산품으로 둔갑했다. R사의 야간표적지시기 국산화율은 표면적으로 90%를 상회하지만 대부분 수입부품을 국산으로 둔갑시켜 국산화율을 높였다는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기도 했다. 국산화율 산정에 필수적인 회계자료 분석은 조직과 인력부족으로 업체가 허위자료를 제출할 경우 정부가 이를 선별하거나 제재할 수단이 없는 실정이다.
<김대우 기자@dewkim2>dewkim@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