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후쿠시마(福島) 원전사태를 맞아 ‘위기관리 능력 부재’로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고 있는 도쿄전력 핵심 지도부가 잇따라 사임의사를 표명하고 나섰다.
시미즈 마사타카(淸水正孝) 사장이 지난 13일 사고수습 후 사퇴를 밝힌 데 이어 17일엔 가스마타 쓰네히사(勝俣恒久) 회장이 6월 사임을 고려중이라고 말했다. 가스마타 회장은 이날 원전 사고수습 계획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에서 “6월 주주총회 때 아무도 물러나지 않는 것을 세상과 주주들은 허락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이같이 밝혔다.
가스마타 회장은 지난달 11일 사고발생 후 와병을 이유로 보름 가까이 종적을 감췄던 시미즈 사장을 대신해 전면에서 사태수습을 총지휘해 온 인물이다. 그는 지난달 30일 기자회견에 모습을 나타내 “불안과 심려, 걱정을 끼쳤다”며 국민들에게 깊이 고개를 숙였다. 사고 발생 후 3주만에 이루어진 도쿄전력의 첫 공식사과였다. 원전 1~4호기 폐쇄계획과 향후 원자로 냉각방안 등 구체적인 사태수습 계획을 발표한 것도 그다. 지난 11일 복귀한 시미즈 사장이 “최선을 다했다”는 후안무치(厚顔無恥)한 태도로 공분을 산 것과는 분명한 차이를 드러낸다.
이런 이유로 오는 6월 주주총회에서 경영진의 대폭쇄신을 검토중인 도쿄전력 내부에서도 시미즈 사장을 먼저 사임토록 하는 방안이 나오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아사히 신문은 18일 도쿄전력 경영진이 사고 후 건강이 악화된 시미즈 사장을 먼저 물러나게 하고 당분간 가스마타 회장에 사장까지 겸임토록 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보도했다. 표면상으론 건강을 이유로 내세우고 있으나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는 시미즈 사장을 하루라도 빨리 사임토록 하는 것이 향후 사태수습에 도움이 될 것이란 계산이 깔려 있는 셈이다.
그러나 가스마타 회장 역시 일본의 총체적 리더십 부재를 드러낸 인물이라는 평을 비껴가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그가 국민 앞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시점이 사고 후 3주나 지난 때였고 이후 두 차례 기자회견을 열었을 뿐 최악의 자연재해로 망연자실한 국민들의 마음을 달래는 데는 크게 미치지 못한다는 비판이다. 원전 사태가 진척을 보이지 않은 상태에서 사임 의사를 밝히는 것은 또 다른 책임회피가 아니냐는 따가운 눈총도 쏟아진다. 위기관리 전문가인 다카나시 도모히로는 “일이 터졌을 때 선봉에 서서 일을 해결하지 못한 채 허둥대는 것은 일본 기업가와 정치인에 일상적”이라고 꼬집었다.
사실상 사태수습의 주도권을 잃은 시미즈 사장을 대신해 가스마타 회장이 두 몫을 제대로 감당해 낼지, 아니면 이대로 사상 최악의 원전사태를 초래한 ‘재앙의 원흉’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될지는 이제 그의 손에 달렸다.
유지현 기자/prodigy@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