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제2, 제3의 체르노빌 또는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같은 대형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며 강한 어조로 경고했다.
반 총장은 20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서 열린 국제과학회의 ‘체르노빌 원전사고 25년 미래안전회의’에 참석해 “기후변화에 따라 기상이변이 더 많이 발생한다”며 “원전 취약성이 계속 커지고 있어 안타깝게도 체르노빌, 후쿠시마와 같은 재난을 우리는 앞으로도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사고가 일어나면 그 영향은 국경을 초월하기 때문에 원자력 문제는 일국의 정책 문제가 아닌 세계인의 이해가 걸린 초국적인 문제”라고 역설했다. 이에 따라 국제원자력기구(IAEA)를 강화하고 원자력 발전소 건설과 보안, 투명한 정보공개 등에 관한 국제적인 기준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반 총장은 또 “원자력은 자원 부족시대에 논리적인 대안으로 비치기도 하지만 이런 사고를 겪으면서 우리가 위험과 비용을 제대로 분석했는지,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했는지 고통스러운 질문에 맞닥뜨리게 된다”고 자성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반 총장이 원전 사고 가능성을 강한 톤으로 경고한 반면 이날 체르노빌 방문에 동행한 아마노 유키야 IAEA 사무총장은 “세계 여러 나라가 앞으로도 원자력을 주요한 에너지원으로 선택할 것이므로 안전 확보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며 원자력 이용이 불가피함을 부각시켰다. 반 총장은 이날 헬기로 체르노빌 사고 현장을 방문해 빅토르 야누코비치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약 20분간 환담했다.
우크라이나에서 열린 이번 국제회의는 1986년 4월 26일 발생한 체르노빌 원전사고 25주년을 맞아 우크라이나 정부가 유엔 각 기관 등의 협력을 얻어 3일간의 일정으로 개최됐다. 앞서 19일에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 주요국 등 60여개국이 ‘기부회의’를 갖고 체르노빌 방호벽 건설 등에 5억5000만유로(8560억원 상당)에 달하는 재정지원을 결정했다.
20세기 최악의 원전사고로 기록된 체르노빌은 사고 당시 31명이 숨지고 이후 5년간 피폭 등의 원인으로 9000여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치료를 받은 사람만 70만명에 달하고 원전 주변 30㎞ 내에 사는 주민 9만2000명이 모두 강제 이주됐다. 또 방사능 유출에 따른 유전자 변형으로 43명이 암ㆍ기형아 출산 등 각종 후유증에 시달렸다.
이번 회의에 참석한 세계보건기구(WHO) 관계자에 따르면 체르노빌 원전사고 낙진에 노출된 아동 가운데 지금까지 6000명이 갑상선암 진단을 받았다. 또 방사능에 심각하게 노출된 60만명은 일반인 집단에 비해 암 사망자가 4000명이나 더 많은 것으로 추산됐다.
천예선 기자/cheo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