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이 공포정치를 펼치면서 비정상적 행동을 보인 것은 그가 뇌질환을 앓고 있었기 때문일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 같은 주장은 스탈린의 주치의로서 독재자의 죽음을 곁에서 지켜보고 시신 해부 과정에까지 참여한 소련 내과의사 알렉산드르 먀스니코프의 회상기에서 나왔다.
이와 함께 스탈린이 2차 대전 기간 중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를 술에 취하게 해 유럽에 ‘제2전선’을 열게 만든 흥미로운 일화도 스탈린의 심복이었던 비밀경찰 총수 라브렌티 베리야의 일기를 통해 공개됐다.
일간지 ‘모스코프스키 콤소몰레츠’는 21일 ‘환자가 나라를 다스렸다’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먀스니코프의 회상기 중 일부를 공개했다.
소련 시절의 유명한 내과의사였던 먀스니코프는 다른 의사들과 함께 스탈린이 숨을 거두기 전 며칠 동안 그의 다차(러시아식 별장)에 머무르며 독재자의 임종을 지켜봤으며, 사후 모스크바 병원에서 이루어진 시신 해부에도 참여했다. 그가 쓴 회상기는 1965년 정보기관에 압수됐다가 최근에야 그의 손자에게 전달됐다.
조만간 ‘나는 스탈린의 주치의’라는 제목의 단행본으로 출간될 회상기에서 먀스니코프는 스탈린 시신 해부 과정을 상세히 묘사했다.
1950년 3월 5일 스탈린이 사망하고 이튿날 모스크바 제1의학연구소 산하 생의학과에서 그의 시신에 대한 해부가 있었다. 먀스니코프는 회상기에서 “물이 담긴 대야에서 스탈린의 몸에서 나온 내장들이 헤엄치고 있는 것을 보는 것은 조금 으스스하면서도 흥미로웠다”고 썼다.
그는 “스탈린의 뇌 좌반구에서 자두 크기 만한 출혈 지점이 발견됐으며 뇌 동맥은 경화 현상이 심해 몹시 좁혀져 있었다”며 이것이 고혈압의 결과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면서 “뇌 동맥 경화가 스탈린의 잔인함과 대인 의심증, 적에 대한 두려움, 주변 사람과 사건에 대한 부적절한 평가, 완고한 고집 등을 키웠을 것”이라고주장했다.
먀스니코프는 “스탈린은 병을 숨기고 치료를 피했으며 자신의 병이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했던 것으로 보인다”며 “사실상 환자가 나라를 다스리고 있었다”고 결론 내렸다.
한편 또다른 현지 일간 신문 ‘콤소몰스카야 프라브다’는 이날 역사학자 세르게이 크렘료프가 발굴해 정리한 베리야의 일기 일부를 소개했다. 베리야의 일기도 현지 출판사 ‘엑스모’에 의해 조만간 단행본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1942년 8월 18일 자 일기에서 베리야는 ‘코바(스탈린의 당내 별명)’가 자신의 조언에 따라 처칠 영국 총리를 술에 취하게 만들어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시작되는유럽 ‘제2전선’ 개설을 가능케 한 일화를 소개했다.
그해 8월 처칠이 협상을 위해 모스크바를 방문했을 때 스탈린은 그에게 제2전선개설을 줄기차게 요구했다. 처칠은 절대로 안 된다며 흥분해서 협상을 중단하고 귀국 길에 오르려고 했다.
이때 스탈린이 베리야의 조언대로 “술이나 한잔하자”며 분위기를 바꿨다. 술수에 말려든 처칠은 결국 술에 취해 스탈린의 제2전선 개설 제안을 받아들였고 이후 역사는 바뀌었다.
베리야는 일기에서 “코바가 웃으면서 이 얘기를 하면서 ‘미리 적의 약점을 알면얼마나 좋은가’라고 말했었다”고 썼다.
베리야는 이어 1942년 9월 23일 자 일기에서 스탈린의 눈물을 처음으로 봤다고 기록했다. 그는 “오늘 인생에서 처음으로 코바의 눈에서 눈물을 봤다. 내가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병사들이 어떻게 싸우고 있는지에 대한 보고를 끝낼 무렵 코바가 우표를 잡고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듯 눈물을 흘렸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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