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주의에 배치
中 지도부 다시 ‘좌향좌’
중국 수도 베이징의 심장부 톈안먼(天安門) 광장의 새로운 상징으로 떠올랐던 거대한 공자상(孔子像)이 21일 돌연 철거됐다.
지난 1월 11일 정치적으로 민감한 곳인 톈안먼 광장에 9.5m의 거대한 공자상이 들어서면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지 딱 100일 만이다.
신중국 역사에서 공자는 봉건주의 잔재로 여겨지며 문화혁명과 공산주의혁명이 일어날 때마다 가장 먼저 타도의 대상이 됐다. 그랬던 공자가 톈안먼에 걸린 마오쩌둥(毛澤東) 전 주석의 초상화보다 더 크고 웅장한 모습으로 톈안먼 광장에 입성하자, 중국 공산주의와 전통문화의 화해라는 해석을 낳았다.
하지만 지난 21일 새벽 중국국가박물관 북문 앞에 세워졌던 공자상은 갑자기 박물관 내부로 옮겨졌다. 박물관 측은 국가박물관 개ㆍ보수 설계 때 계획됐던 것이라며, 박물관을 개관하기 전 잠시 외부에 세워둔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무게가 17t이나 되는 공자상을 굳이 미리 세워둔 후 옮길 필요가 있을까라는 점에서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더욱이 당시 뤼장선(呂章申) 박물관장은 베이징완바오와의 인터뷰에서 “공자상이 세워진 북문 광장은 국가박물관의 중요한 창구며 정치ㆍ문화적으로 중요한 위치다. 여러 분야의 의견을 모은 끝에 이 자리에 공자상을 세우기로 결정했다”며 의미를 설명했다. 때문에 이에 대해 문화계 일각에서는 중국 지도부가 다시 좌클릭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애당초 공자상을 세워 무너진 도덕성과 인성을 극복하고자 했으나, 중국 정부의 이데올로기와 충돌하자 박물관 내부로 넣어버린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후싱더우(胡星斗) 베이징이공대 교수는 “인의ㆍ화해를 주창하는 공자사상과 투쟁을 강조하는 마르크스주의가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라며 “유교사상이 중국의 미래 가치관과 배치한다고 판단한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톄류(鐵流)라는 이름의 유명 작가는 “공자상을 외부에 설치하면 하나의 상징성을 내포하게 되지만, 내부에 설치하는 것은 그저 평범한 동상에 불과하다”며 “중국 지도부가 유학을 부활시키려던 생각을 접고 좌향좌로 선회한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공자상의 톈안먼 광장 입성이 어색하다는 의견을 많이 보였던 중국 누리꾼은 이번에는 정부의 변덕을 못마땅해하는 분위기다. 한 누리꾼은 “중국에서 가장 불쌍한 남자가 바로 공자”라면서 “정치논리에 따라 존경을 받기도 비난을 받기도 하며 심지어 죽은 지 한참 만에 노벨과 시비가 붙기도 했다”고 꼬집었다. 이는 반정부인사 류샤오보에게 노벨평화상을 주자, 이에 맞서 중국 정부가 공자평화상을 지정한 것을 빗댄 것이다.
한희라 기자/hani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