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경북 칠곡 미군기지에 매립된 고엽제 중 일부가 베트남에서 가져온 것이라는 전 주한미군 스티브 하우스 씨의 증언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또 강원도 민간인통제선(민통선) 인근 주민 대다수가 당시 고엽제 살포에 동원됐으며 현재까지도 고엽제 후유증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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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씨는 “그냥 제초제인 줄 알았다. 물에 타서 풀, 나무에 뿌리라는 지시를 받았지만 고산지대로 물을 구하기 어려워 물을 섞지 않은 채 뿌리기도 했다. 부대원들이 철모나 세숫대야에 담겨 있는 고엽제를 손으로 뿌렸다”고 말했다.
또한 김 씨는 “당시 사용했던 고엽제는 베트남에서 가져온 것으로, 베트남전 출신 지휘관들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월남에서 철수하면서 한국군이 쓰던 걸 가져와서 사용했다. 참전하지 않았던 소대장, 중대장들은 고엽제인 줄 몰랐다. 문서로만 확인했기 때문에 일반 제초제인 줄 알았다. 하지만 월남전 출신 지휘관은 다 알았다. 1973년도 철수 당시 마지막으로 철수 지휘를 한 이들은 귀국 보따리에 고엽제가 담겨 있는 걸 알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손가락 발가락 마비… 지금은 걸을 수도 없어”=당시 민통선 인근에 살던 주민 대부분은 고엽제 살포 작업에 직ㆍ간접적으로 참여했다.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생창리에서 71~72년 군으로부터 일당을 받고 직접 고엽제 살포 작업에 참여했다는 권모(74) 씨는 “군부대에서 야간근무 때문에 제초 작업에 필요한 인력이 부족하니 ‘풀 죽는 약 좀 쳐 달라’고 했다”며 “수숫가루를 빻은 듯한 색깔의 가루를 물에 타서 뿌렸다. 포대에 큰 글자로 ‘취급주의’라고 쓰여 있었고 해골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위험물질이라고 추측은 했지만 고엽제인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같은 지역에 거주했던 장모(70) 씨도 “군인의 권한이 막강하던 시대라 도와 달라는 요구를 안 들어줄 수 없었다. 뭔진 모르지만 해 달라니까 해줬다. 경운기에 200m 길이 호스를 연결해서 뿌렸다”고 밝혔다.
모르고 시작한 일이었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주민들은 수십년 동안 고엽제 후유증으로 고통 받으며 살고 있지만 피해 보상은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다.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유공리에서 농사를 짓다가 고엽제 살포 작업에 경운기를 빌려줬던 박모(70) 씨는 끔찍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그는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고 고름과 진물이 생기더라. 10년 동안 피부병인 줄 알고 살았다. 보훈병원에 갔더니 월남 갔다 왔냐고 묻더라. 고엽제 피해자와 증상이 비슷하다는 걸 그때 알았다. 나환자촌에 가서 약도 구해봤지만 소용없었다”고 말했다.
1971~74년 25사단 70연대에서 벙커병으로 근무하며 고엽제 살포 작업에 동원됐던 박모(62) 씨는 “20년이 지난 뒤 발가락이 이상해서 병원을 찾았더니 말초신경이 손상됐다고 하더라. 그 이후 손가락 α발가락 모두 마비돼버렸다. 요즘은 조금만 걸어도 주저앉는 지경”이라고 토로했다.
3사단 71포대에서 근무했던 장모(61) 씨는 “피부도 가렵고 다리도 힘이 없어서 외출을 할 수가 없다. 월남전 피해자들과 비슷하다. 보상을 요구하니 군 측에서 조사에 나서기도 했었는데 고엽제를 뿌린 일이 없다고 하더라. 우리가 직접 뿌렸는데 그런 일이 없다고 하니… 어쩔 수 없는 상황 아니냐”고 망연자실해했다.
사건팀/sjp10@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