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진수 전 감사원 감사위원이 부산저축은행그룹의 청탁을 받고 지난해 김종창 전 금융감독원장에게 금감원 검사 강도를 낮춰달라고 부탁했을 것이라는 정황이 검찰 조사 결과 드러나면서 저축은행 발(發) 파장은 정·관계 인사가 연루된 ‘게이트급’ 사건의 요건을 갖춰 나가고 있다.
감사원 최고위직 조차 일개 저축은행의 ‘브로커’ 역할을 한 만큼 부산저축은행의 로비 종착지는 더 ‘윗선’일 것이라는 추론도 나온다. 특히 부산저축은행의 로비스트들은 학연 등을 매개로 은행의 퇴출저지를 위해 금감원, 청와대 등에 줄을 댄 의혹이 짙은 데다 정치권 유력인사와 두터운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인물도 이 은행을 위해 직·간접적으로 도움을 줬다는 진술에 검찰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양파껍질 벗기듯 드러나는 새로운 커넥션은 이미 메머드급으로 급팽창했다.
▶은진수-김종창“딜 할 필요 있었나”=31일 검찰에 따르면 은씨는 지난해 2월~10월까지 부산저축은행의 ‘금융브로커’ 윤여성(56·구속)한테서 3차례에 걸쳐 현금 7000만원을 수수한 혐의 등으로 이날 중 구속이 결정된다. 윤씨가 은씨에게 돈을 건넨 이유는 간단하다. 당시 감사원 지휘로 금감원이 강도높게 진행하던 저축은행에 대한 검사를 살살해달라고 김종창 당시 금감원장에 부탁하라는 것. 윤씨로선 로비 대상을 정확하게 짚은 셈이었다.
김 전 금감원장으로서도 예상 외로 감사를 세게 진행하던 감사원의 최고위직인 은씨에게서 접점을 찾을 필요가 있었다. 까칠하게 나오는 감사원이 금감원에 기관 경고를 넘어 저축은행 검사 라인 직원에게도 부실검사 책임을 물어 개인 경고를 결정하는 건 김 전 금감원장에게도 부담이기 때문. 은씨로서도 10년지기인 윤여성씨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두 사람간 ‘딜’의 조건은 어느 정도 마련됐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금감원 관계자들은 그러나 은씨의 로비는 개연성은 있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한 게 아니냐는 분석을 하고 있다. 금감원 사정을 잘 아는 한 인사는 “저축은행 검사를 총괄하던 김 모 국장은 김 전 금감원장과 동향으로 아끼는 후배였는데 징계 처분을 막진 못했고, 부산저축은행도 결국 문을 닫았다”고 했다.
은씨는 부산저축은행으로부터 돈을 받고 청탁을 위해 움직였지만, ‘은-김’ 커넥션은 작동하지 않은 셈이다. 검찰은 그러나 사실 관계 파악을 위해 김 전 금감원장을 소환해 ▷은씨를 만났는지 ▷금품을 받고 저축은행 검사 결과 왜곡을 지시했는지 등을 캔다는 방침이다.
▶소망교회 출신 박모씨 등 추가 로비스트 역할 주목=부산저축은행 사건은 좀 더 파급력이 큰 연루될 조짐을 보인다는 점에서 앞서 걸려든 은진수 씨는 시작에 불과하다는 관측이다. 먼저 ‘브로커 박씨’로 알려진 인물에 관심이 모아진다. 그는 교수 출신으로 소망교회 장로인 이명박 대통령과 교회 소모임을 한 적이 있는 등 현 정권 유력 인사와 두루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저축은행 관계자들은 검찰 조사에서 박씨의 존재를 털어놨고, 그가 이 은행이 진행한 각종 부동산 사업에서 인허가 취득 등에 도움을 줬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씨는 특히 부산저축은행의 자기자본비율이 8% 이하로 떨어진 지난해 6월, 경영난 타개를 위한 방안을 모색하던 김양(59·구속) 부회장을 위해 정·관계 로비를 거쳐 1500억원의 유상증자를 성공시킨 인물로 알려지고 있다. 증자엔 삼성꿈장학재단과 포스텍이 각각 500억원을 KTB자산운용을 통해 투자했고, 이 과정에 박씨가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는 진술을 검찰이 확보하고 캐나다로 도피 중인 박씨의 신병 확보 방안을 저울질하고 있다.
<홍성원 기자@sw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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