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규 검찰총장의 저축은행 비리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이 예사롭지 않다. 지난 30일 간부회의에서 “(저축은행 비리를) 끝까지 수사해 국민들의 속을 시원하게 해줘야 한다”고 밝혔다. 마침 이날 이명박 대통령은 라디오·인터넷 연설에서 부산저축은행 비리와 관련해 “정말 가슴 아프고 깊이 고민하고 있다”며 “서민들이 느끼는 상대적인 박탈감과 분노를 알고 있다”고 말한 것과 때를 같이했다.
김 총장은 지난 3월 15일 저축은행 수사가 본격화한 이후에도 일절 언급을 하지 않다가 이날 수사 추진력에 한층 힘을 더하는 주문을 한 것이다. 부산저축은행 대주주 등이 해외로 빼돌린 자금을 추적하기 위해 사법공조 조약을 체결하지도 않은 캄보디아와 수사 공조를 이끌어 냈다고도 대검은 전했다.
선발출전 시간의 90%가량을 기대 이하의 실력으로 허비했다며 비난받아온 김 총장은 ‘버저비터’로 검찰에 역전승을 안길 절호의 기회를 맞은 것이다. 임기 두 달여를 남긴 상황에서의 ‘마지막 승부’다.
김 총장은 그동안 고립무원 처지였다. 지난해 봄 터진 스폰서 검사 파문, 여기서 가지를 친 검찰 개혁론은 아찔했다.
수사는 바람 잘 날 없었다. 전국청원경찰협의회의 입법로비 수사는 정치권의 큰 반발을 샀다.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은 덮기에 급급하다고 질책받았다. 총장 자리를 둘러싼 차기 후보 간 경쟁 구도로 김 총장의 영(令)이 서지 않는다는 얘기도 공공연하게 나돌아 그를 불편하게 했다.
갖은 입방아 속에서도 김 총장은 ‘때’를 기다렸다. 국회에서 검찰의 최대 화력부대인 중수부 폐지안을 통과시키려 할 때도 우직했다. ‘때’는 홀연히 찾아왔다. 사회지도층 비리, 금융비리, 토착 비리 발본색원에 주력해야 한다던 그의 방침대로 3가지 테마가 얽힌 저축은행 비리 사건이 수사망에 포착됐다. 검찰을 흔든 여러 악재를 딛고 명예 회복할 발판이 마련된 것이다.
다만, 여야가 저축은행 비리에 대한 국정조사에 합의한 점이 김 총장의 ‘버저비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속단하기 어렵다. 자칫 포물선의 정점을 지나는 공을 경기장 밖으로 쳐낼 수도 있어서다. 검찰의 존재가치를 증명해 보일 김 총장의 역전드라마 결말에 검찰 조직은 물론 국민의 관심이 쏠려 있다.
홍성원 기자/hongi@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