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구구식 운영탓 안전성 구멍
“놀이터가 아이들을 위한 곳 아닙니까? 지금과 같이 주먹구구식으로 놀이터를 보수하다가는 되레 주민에게 욕만 먹게 생겼습니다.”
서울 목동의 한 아파트단지에서 만난 최모 관리소장은 놀이터 이야기에 언성을 높였다. 정부의 강화된 놀이터 안전기준에 맞춰 지금의 놀이터를 모두 보수해야 할 판이기 때문이다. 2003년 완공된 이 아파트단지에는 현재 놀이터가 4개다. 하지만 단지 내 놀이터 중 정부의 설치검사 기준을 통과한 곳은 한 곳도 없다.
개정된 ‘어린이 놀이시설 안전관리법’에 따르면 법 시행(2008년 1월27일) 이전 설치된 시설에 대해 내년 1월 26일까지 새 법에 맞도록 설치검사를 마치게 하고 있다. 놀이터를 보수하고 그에 따른 검사 합격증을 해당 구청 주택과에 제출하면 절차가 완료된다. 그러나 기한까지 설치검사를 받지 않은 놀이터는 법에 따라 폐쇄해야 할 상황에 놓여 있다. 실정이 이렇다 보니 아파트 관리소 측의 불만이 크다. 인근 단지의 한 소장은 “지금 놀이터 한 곳을 보수하는 비용에 4000만원 정도가 필요한데 자금은 부족하고 시간도 촉박해 놀이터를 보수할 엄두를 못 낸다”고 말했다.
정부에서 놀이터 보수비용을 지원해 주기는 하지만 해당 지자체마다 지원금이 달라 재정이 비교적 안정적인 구와 그렇지 못한 구 사이에 ‘놀이터 양극화’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양천구는 그나마 교체비용의 40%까지 지원을 해주고 나머지는 아파트 측이 부담하고 있다.
또한 시간에 쫓겨 정부의 안전기준을 맞추려다 보니 놀이터의 개성이나 질이 저하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양천구 소재 아파트 관리소는 구청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기 위해 한달 이내에 업체를 선정하고 착공에 들어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원 결정이 취소되기 때문에 설치업체를 급하게 선정하게 되고 이는 놀이터의 질 저하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설치업체 선정도 국토해양부 고시에 따라 최저가 낙찰제로 운영되고 있는 등 안전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가 오히려 안전성을 해칠 수 있는 상황이다.
한편 놀이터 검사를 담당하는 곳은 태부족이어서 이 같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4월 말 현재 전국 5만5000여 놀이터 가운데 2만3000개 정도만 검사를 받은 상태에서, 정부의 위탁을 받은 건설생활시험연구원과 한국기계전기전자시험연구원 등 2곳만이 놀이터 설치검사를 전담하고 있다. 두 곳의 인력을 합쳐야 고작 40~50명에 불과하다.
정치권에서도 문제를 인식하고 검사기한을 연장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민주당 최재성 의원 등 여야 의원 24명이 지난 3월 ‘어린이놀이시설 안전관리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제출했고, 행정안전부도 뒤늦게 검사 위탁업체를 4곳으로 늘릴 계획을 세우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이태형ㆍ양대근 기자/th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