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저녁 9시30분, 서울의 한복판인 종로경찰서에 있던 손미정 기자는 감기약을 구하기 위해 거리를 나섰다. 손에는 종로구 당번약국 9곳의 이름이 적힌 명단이 들려 있었다. 그러나 찾아간 약국들의 셔터는 굳게 닫혀 있었다. 한참을 헤맨 끝에 약을 구한 곳은 S모 약국. 종로경찰서에서 1.99㎞(직선거리) 떨어진 이곳은 걸어서 30분 거리에 있었다.
같은 시각. 헤럴드경제 취재진의 전화를 받은 서대문구 E약국 약사는 약을 사러 가겠다는 주문에 “오늘 영업 이미 끝났다. 다음에 와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대한약사회가 운영하는 ‘당번약국’(http://www.pharm114.or.kr/) 사이트에 이곳은 오후 10시까지 영업한다고 적혀있었다. 약사는 “휴일이라 오늘 피곤하다”며 “9시40분에 문 닫고 일찍 들어갈 생각”이라며 다른 약국으로 갈 것을 주문했다.
6일 헤럴드경제 기동취재팀의 취재결과, 대한약사회에서 자율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서울시내 16개 구 당번약국 59개 중 25%가 넘는 15곳이 신고한 대로 영업을 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자정을 넘어 약을 구할 수 있는 심야응급약국이 아예 없거나 있어도 자정 전에 문을 닫는 구가 8곳(50%)이나 됐다.
용산구의 경우 당번약국ㆍ심야응급약국이 단 한 곳도 없었다. 저녁 9시30분이 지나면 약을 구하기 위해 다른 구로 이동해야 한다는 뜻이다. 구로구에도 당번약국이 전혀 없었으며 심야응급약국으로 신고한 한 곳도 자정에 문을 닫아버렸다. 구로구 W약국 약사는 “내일 준비도 해야 해서 일찍 닫는다”고 이유를 말했다.
심야응급약국인 중구의 M약국의 경우 새벽 4시까지로 돼 있지만 새벽 3시까지만 문을 열었다.
이유를 묻는 말에 약사는 “심야응급약국은 법으로 정해진 게 아니라 약국 자율이다”는 대답이 차갑게 돌아왔다.
이와 관련해 대한약사회 관계자는 “당번약국 이행 여부를 법으로 규제하는 건 아니지만 약사회가 윤리 기준으로 제재할 수는 있다”며 “다만 한두 번 문을 닫았다고 해서 무조건 제재할 수는 없고, 여러 차례 누적된 경우 그때 가서 판단할 문제”라고 해명했다.
마포구 연희동에 사는 이모(30ㆍ회사원) 씨는 “밤중에 아기가 갑자기 열이 나거나 남편이 감기에 걸려도 약을 구할 방법이 없다”며 “어차피 약국가도 복약지도라곤 ‘하루 세번 두알씩 드세요’뿐인데 슈퍼에서 약을 팔면 안 된다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기동취재팀/madpe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