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한넘긴 최저임금안…원인·파장
25% 인상안 놓고 파행
88년 최저임금법 적용 이후
노사 만장일치 합의 단 4번
매년 지루한 힘겨루기 반복
피해는 신규채용 근로자들
최저임금 보호근거 사라져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노사 측 위원들이 모두 사퇴하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지난 4월 초 최저임금위원장 선출 때부터 노동계의 반발로 파행을 겪더니 결국 최저임금 결정 시한을 지키지 못하고 노사 측 위원들이 모두 사퇴하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이들이 내년 최저임금을 결정하지 못하면 기존 근로자들은 올해 최저임금을 적용받게 되지만, 신규 채용 근로자들은 최저임금 기준이 사라지게 되는 극단적인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복수노조 설립이 처음 허용된 1일‘ 대우증권 지점 노동조합’ 손화성(오른쪽) 위원장이 서울서부지방노동청에 노조설립 신고서를 제출하고 있다. 손 위원장은 “근무 여건이 달라 본사 노조로는 권익을 대변할 수 없어 지점노조를 설립하게 됐다”고 밝혔다. 정희조 기자/checho@ |
▶근로자 평균임금 절반 vs 동결=내년에 적용될 최저임금을 둘러싼 노동계와 경영계의 협상은 25%의 차이를 두고 시작됐다. 노동계에서는 올해 4320원보다 25.2% 오른 5410원을 제시했으며, 경영계는 ‘동결’을 주장했다. 노동계에선 근로자 평균임금의 절반은 돼야 한다는 논리로 5410원을 제시했으며, 경영계에선 설문조사 결과 중소기업 절반가량이 동결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근거로 동결을 고집했다. 이후 이들의 주장은 경총 건물을 점거하는 등의 실력행사 속에 노동계 4780원, 경영계 4455원까지 좁혀졌다.
사실 최저임금위원회가 파행으로 얼룩진 것은 이번뿐만 아니다. 지난 1988년 최저임금법이 처음 적용된 이래 24년 동안 매년 최저임금이 정해졌지만, 법의 취지를 살려 노사 만장일치로 결정된 경우는 4번밖에 없었다.
▶안이한 고용노동부=노동계와 경영계 모두 사퇴하는 상황이 발생했지만, 정부는 다소 느긋한 모습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양측이 사퇴 의사를 밝혔지만, 이들 행동도 결국 협상의 과정으로 봐야 한다”며 “다음주 중에 회의를 다시 열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최저임금위원회에 소속된 위원들이 사퇴서를 제출하더라도 정부가 수리하지 않는 이상, 이들의 사퇴는 효력이 없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고용부 측의 설명대로라면 노동계와 경영계의 사퇴가 최저임금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에서 협상을 하기 위한 ‘할리우드 액션’일 수 있다. 과거에도 노사 가운데 한 측이 퇴장하거나 사퇴한 경우는 비일비재했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도 적지 않다.
그렇다고 법을 집행하는 정부가 이를 용인하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최저임금법에 나와 있듯이 3월 31일까지 고용노동부 장관은 최저임금 결정을 요청해야 하고, 최저임금위원회는 이에 따라 90일 이내에 최저임금안을 의결하고 고용부 장관에게 제출해야 한다. 그리고 고용부 장관은 8월 5일까지 결정해야 한다.
▶올해 결정 안 되면, 노동계 불리=만약에 올해 안에 최저임금위원회가 내년 최저임금안을 결정하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올해 적용받고 있는 최저임금은 오는 12월 31일까지만 적용되며, 내년에는 효력이 없어지게 된다.
일단 최저임금을 결정하지 못하면 경영계보다는 노동계에 현실적으로 불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판단된다. 고용부에 따르면 내년 최저임금을 결정하지 못하면 기존에 고용돼 있는 근로자는 올해 최저임금을 내년에도 적용받게 된다. 기존에 근로관계를 맺고 있는 근로자의 경우 후퇴한 근로조건을 적용하기 어렵기 때문에 내년 최저임금이 결정되지 않더라도 올해보다 악화된 기준을 적용하지 못한다.
문제는 신규 채용자들이다. 내년에 적용될 최저임금이 결정되지 않으면, 이들 신규 채용자들은 최저임금의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된다. 결국 사용자가 올해 최저임금 이하로 근로계약을 맺더라도 근로자가 대항할 근거가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법정시한은 넘겼지만 7월 중순까지는 내년 최저임금안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도제 기자/pdj24@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