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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검은 피부의 당당한 한국인, 문태종
어머니의 나라에 특별귀화…가슴에‘태극마크’달고 아시아농구선수권대회 훈련 구슬땀
국적심사서 만장일치 통과

우수인재로 복수국적 취득


스페인·러시아 리그서 최고대우

한국서 연봉 대폭 줄었지만

어머니 나라 찾아온 것 후회없어


한국말 아직은 떠듬떠듬해도

젓가락질이 자연스러운

그의 몸엔 천상 한국인의 피가…




한국말은 거의 못한다. 외모도 영락없이 외국인이다. 스스로 밝히기 전에는 이방인으로 보일 수밖에 없는 하프 코리언(Half Korean).

하지만 2011년 7월 21일 이후 카메론 제로드 스티븐슨은 문태종(36)이라는 이름의 당당한 한국인이 됐다.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고 아시아농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하는 대한민국 농구 국가대표다.

한국은 그의 어머니의 땅. 34년간 어머니의 나라로만 알고 살았을 뿐, 한국인으로 살아갈 날이 이렇게 빨리 오게 될 줄은 몰랐다. 자신보다 먼저 한국 프로농구에 진출한 동생 태영(창원 LG)에 이어 지난해 인천 전자랜드 선수로 화려하게 등장한 문태종은 한국인 어머니 문성애 씨와 미국인 토미 스티븐슨 씨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이다. 아버지 스티븐슨 씨가 미 공군으로 한국에서 복무할 당시, 어머니와 결혼하면서 태종과 태영 형제를 낳았다. 갓난아기 때 미국으로 건너가 한국말을 전혀 못하고, 한국에 대한 기억도 없다.

그러나 한국인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항상 ‘한국인이라는 부채의식’을 갖고 있었다. 어머니는 강요하지는 않았으나, 아들이 한국인이 되는 날을 손꼽아 왔다.

감격의 그날은 지난달 21일 찾아왔다. 우수인재 복수국적 취득제도에 따라 특별귀화를 하게 된 것이다. 국내 계속거주기간이 3년이 되지 않아 현행 국적법에 명시된 귀화요건을 충족하지 못했지만 대한체육회장의 추천으로 태종ㆍ태영 형제는 법무부 국적심의위원회 심사를 만장일치로 통과했다. 


특별귀화를 예상하지 못했던 지난 4월까지만 해도 열심히 한국어를 배우며 귀화시험을 준비했던 문태종에겐 행운이 따른 셈이다.

그는 한국국적을 얻자마자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고 존스배와 아시아농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한다. 허재 농구 국가대표팀 감독은 12명의 엔트리에 문태종의 자리를 비워놓고 있다 귀화가 성사되자 바로 대표팀 유니폼을 입혔다.

지난달 29일 농구 국가대표팀이 훈련 중인 용인 마북리 KCC 체육관에서 훈련 중이던 문태종을 만났다. 귀화 후 언론의 뜨거운 관심에 아직 어리둥절해 보였지만 대표팀의 일원이라는 현실에 만족해하고 있었다.

문태종은 한국에서 1년을 보낸 소감을 묻자 “정말 오길 잘했다. 수입이 많이 줄긴 했지만 어머니가 좋아하고, 아이들도 한국을 경험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그리스, 스페인, 러시아 등 유럽 특급리그에서 활약하며 최고의 대우를 받았던 문태종은 한국 프로농구에 진출하며 연봉이 대폭 줄었다. 물론 나이 때문에 전성기가 지났지만 유럽과 한국 무대의 연봉만 놓고 보면 큰 손해를 감수한 셈이다. 


한국행을 결심한 결정적인 계기는 역시 어머니였다.

그는 “좀더 일찍 왔으면 좋았을텐데 작년에야 오게 됐다. 항상 어머니가 한국에서 뛰면서 생활하는 것에 대해 얘기했지만 쉽지는 않았다. 그러나 더 늦으면 오지 못할 것 같아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사실 국내 프로농구계는 더 일찍 문태종에게 관심을 보였으나 ‘보수가 적어서’ 불러올 수 없었다. 결국 자신의 뿌리이자 어머니의 고향인 한국에서 뛰어보자는 본인의 생각에서부터 실마리가 풀렸다.

혼혈이 흔한 외국이지만, 한국은 워낙 문화가 달라 고민을 많이 했을 법도 한데 그의 말은 달랐다.

“유럽에서는 미국인이라며 이방인으로 분류됐는데, 한국에서는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며 친근하게 대해줬다. 전혀 힘들지 않았다”고 했다.

미국프로풋볼(NFL) 피츠버그 스틸러스에서 활약하며 슈퍼볼 우승과 MVP를 거머쥔 하인즈 워드 역시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대표적인 하프 코리언 스타다.

문태종도 비슷한 길을 걸어왔다. 다만 그는 아버지와의 관계가 좀더 친밀해 보인다. 비록 함께 살지는 않지만 아버지는 그에게 농구를 가르쳤고 어떤 나라, 어떤 리그에 가서 뛸 때도 그를 찾아와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문태종은 “아버지는 5~6세 때 동생과 나에게 농구를 가르쳐 주셨다. 지금도 꾸준히 연락하고 지내며, 내가 한국에서 뛰고 대표선수가 된 것도 안다”고 말했다.

그의 아버지 토미 스티븐슨 씨의 이력에도 아들 2명이 한국 프로농구에서 활약하고 있다는 사실이 분명히 밝혀져 있을 만큼 문태종과 아버지의 관계는 친밀하다.

문태종은 한국말을 빨리 배우고 싶어한다. 지난 4월 귀화시험을 준비할 때만 해도 힘들었다. 먼저 한국에 들어와 뛰던 전주 KCC의 전태풍(미국명 토니 애킨스)이 능수능란(문태종의 입장에서 보면)하게 한국말을 하는 모습이 부럽기만 하다.

말이 서툰 것에 비하면 한국음식은 너무 잘 먹는다. 인터뷰를 하던 날 점심메뉴가 부대찌개였다. 문태종은 통역과 함께 앉아 두 그릇을 뚝딱 비웠다. “어머니가 잡채, 만두, 불고기 등을 자주 해주셔서 잘 먹는다”고 했다.

과연 완전한 한국인으로서 살아갈 자신이 있는지, 또 한국에 정착할 계획이 있는지 궁금했다.

그는 “언어장벽에다 집이나 친구가 미국에 있어 쉽게 결정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어머니 역시 미국에서 사업(일식당 운영)을 하고 있어 금방 한국에 정착하기는 어렵다”면서도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생활하겠지만 어머니와 함께 한국에서 사는 미래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여지를 남겼다. 


문태종이라는 이름은, 혼혈선수 드래프트에 참가할 당시 어머니가 지었다. 그의 아이들에게 한국이름을 지어줄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다. “아, 좋은 생각인데 미처 못했다”면서 “딸이 한국에서 태어나 미들네임을 한국식으로 붙여주려 한 적은 있는데 아는 단어가 없어 못한 게 아쉽다”고 말했다.

인터뷰 내내 사진을 위한 포즈를 취하면서 “피곤하다(tired)”는 말을 연방 내뱉었지만, 한국인 문태종에 쏠리는 관심을 싫어하지 않았다. 한국인으로 살아갈 통과의례라고 여기는 듯했다.

아버지에게서 배운 농구로, 어머니의 나라에 돌아온 문태종. 그의 뒤늦은 코리언드림은 서서히 영글어가고 있다.

김성진 기자/ withyj2@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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