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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ho> 국내 스포츠의 역대 귀화선수
1980년대 프로야구의 재일동포 선수에서부터 최근 주요 프로스포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외국인 용병까지 한국 스포츠에서 다른 국적의 선수가 뛴 경우는 적지 않다.

돈을 받고 뛰러오는 용병과 달리 초창기 재일동포 야구선수나 최근 프로농구에 등장한 혼혈선수는 한국인의 핏줄을 갖고 있다. 하지만 한국인으로 귀화해 한국국적을 취득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화교 출신인 후국기 감독의 아들로 한국 배구 국가대표까지 지낸 후인정의 경우가 그 시초에 가깝다. 뛰어난 실력에도 화교라는 이유로 태극마크를 달지 못했던 후국기 씨는 자신의 한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후인정이 1995년 고교 졸업 당시 귀화시켰다. 후인정은 훗날 한국 배구를 이끄는 대표선수로 활약했다. 

[사진=이상섭 기자 babtong@heraldcorp.com]


2000년대는 프로축구의 외국인 선수가 귀화 러시를 이뤘다. 

1992년 러시아 용병으로 천안 일화 프로축구단에서 신들린 선방으로 활약한 발레리 사리체프는 2000년 그의 별명이던 ‘신의손’을 한국이름으로 택해 귀화했다. 현재 대교 여자축구단 골키퍼 코치를 맡고 있다. 그가 구리 신씨의 시조가 된 점도 흥미롭다.

러시아 청소년대표까지 지낸 수원 삼성의 데니스는 성남 일화로 이적한 뒤 ‘이성남’으로 귀화했다. 크로아티아 출신 싸빅은 ‘이싸빅’으로, 세르비아 출신의 골잡이 마니치는 ‘마니산’이라는 한국이름을 갖고 귀화했다. 하지만 신의손을 제외하면 대부분 한국에 정착해 살려는 계획은 없었다.

몇년 전부터는 세계 탁구 최강인 중국 선수의 한국 귀화 붐이 일고 있다.

중국대표 기회가 바늘구멍이다보니 외국으로 귀화해 국가대표의 꿈을 이루려는 것이다. 중국 여자청소년대표 출신 탕나는 ‘당예서’라는 이름으로 귀화한 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 한국대표로 출전해 단체전 동메달을 따냈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는 석하정(중국명 쉬레이)이 태극마크를 달고 단체전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 밖에도 곽방방, 전지희(티안민웨이) 등 귀화 탁구선수가 급증하고 있다.

축구나 탁구의 경우 완전한 외국인의 귀화지만, 프로농구의 혼혈선수는 어머니의 피를 이어받은 한국계라는 점이 다르다. 문태종(전자랜드)ㆍ태영(LG) 형제, 전태풍(KCC), 이승준(삼성), 이동준(오리온스)이 혼혈선수 드래프트를 통해 한국땅을 밟은 뒤 귀화를 택했다.

농구는 과거에도 김동광 김성욱 권종오 등 혼혈스타가 있었고, 한국에서 대학을 나와 프로에서 활약 중인 아르헨티나계 김민수(SK)도 있다.

김성진 기자/ withyj2@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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