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조계종이 통렬한 참회선언을 했다. 조계종 ‘자성과 쇄신 추진 결사본부’ 화쟁(和爭)위원장인 도법(道法ㆍ62) 스님은 23일 서울 견지동 템플스테이기념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세상이 종교를 걱정하는 시대를 만든 당사자로서 이 시대 모든 분에게 부끄럽고 죄송하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종교평화 실현을 위한 불교인 선언-21세기 아소카 선언’을 발표했다.
조계종이 8개월에 걸쳐 각계 뜻을 모아 만든 ‘21세기 아소카 선언’은 기원전 3세기 인도의 정복왕으로 불교도였으나 곳곳의 석주(石柱)에 이웃 종교를 존중하는 내용을 새긴 아소카왕의 선언을 차용한 것이다. 이번 선언은 현 정부와 끊임없이 대립각을 세워왔던 조계종의 행보이기에 더욱 주목된다. 이에 대해 스님은 ”어떤 정치적 물리적 폭력상황에서도 비폭력으로 대응하겠다. 안 싸우고 해결하려 들면 길이 열린다. 세상은 그동안 편 갈라 싸워왔다. 이젠 철 좀 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봄부터 조계종의 자성과쇄신추진결사본부장을 맡아 종단의 개혁작업을 주도하고 있는 도법 스님은 부드러운 외모와는 달리 단호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한국 불교개혁의 상징적 인물인 스님은 지난 1990년 ‘선우도량’을 만들고 청정불교운동을 이끌어왔다. 대안학교, 귀농학교를 만들어 환경운동도 전개했고, 전국 탁발순례를 펼치기도 했다. 1998년 종단 분규 때에는 총무원장 권한대행을 맡아 사태를 수습했고, 이후 전북 남원의 실상사로 돌아간 바 있다.
그러나 이번 아소카 선언은 벌써부터 “실체가 잡히지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구체적인 내용과 실천방안이 없어 공허하다는 것. 특히 조계종 개혁의 골갱이에 해당되는 ‘사찰 재정공개’는 여전히 요원해 보인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국내 최대의 불교종단인 조계종이 진정코 개혁하려면 생명과 평화만 외칠 게 아니라, 사찰 재정부터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것. 그 것이 모든 개혁의 시초이자, 동력이 될 것이란 인식이 지배적이다. 따라서 인터넷 웹사이트에 사찰 재정을 10원 끝단위까지 낱낱이 올리든지, 외부 회계법인으로부터 감사를 받든지 하는 획기적인 방안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이에 스님은 “잘못한 게 있으면 투명하게 고백하고 공개해야 한다. 조계종단의 가장 큰 문제가 사찰 재정공개라면 해야 한다. 총무원부터 해야 한다. 그게 자성과 쇄신이다. 그리고 직영 사찰, 직할 사찰, 전국 사찰로 확대해야 한다. 다 함께 하면 그게 바로 결사(結社)가 아니겠는가”라고 강조했다. 따라서 이번 선언을 뒷받침할 구체안을 만들고, 실질적인 개혁을 독려하는 게 도법 스님에게 부여된 가장 중요한 책무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멀다.
이영란 선임기자/ yr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