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을땐 높이고 나쁠땐 낮추고”무의미한 투자정보 난무…글로벌 금융쇼크 속 지수산출 정확도 부재 이유는
美 신용강등·유로존 쇼크…잇단 대외 돌발악재 탓하기엔
매크로 경제 분석력 수준이하
상장사 분석 바텀업방식 의존
실적·지수전망치 오류 가능성
外人 투자비중 높아 한계 봉착
국제금리등 유동성 파악 우선
대형증권사 맹신 습관 버리고
레버리지·인버스 몰빵 피해야
“이번 지수 급락으로 당사 하우스(리서치센터)의 하반기 KOSPI 전망치인 2000~2550포인트의 하단이 이미 훼손되었습니다. 당사의 하반기 전망치를 1850~2300포인트로 수정 제시합니다. 이번 하우스 뷰 조정과 관련해 여러가지 변수와 상황들에 대한 보다 세심한 분석이 부족했음을 반성하고 있습니다.”
8월 첫주 코스피가 4거래일 만에 12% 가까이 급락하면서 여의도 증권가는 충격에 빠졌다. 신한금융투자에서 지수 전망을 담당하는 심재엽 투자전략팀장은 8일자 리포트를 잘못된 지수 전망에 대한 사과문으로 시작해야 했다.
▶고무줄 같은 지수 전망=글로벌 증시가 8월 들어 미국 신용등급 강등 이후 부각된 더블딥(이중침체) 가능성, 유로존의 신용경색 우려로 7월 말 대비 20% 안팎 폭락했다. 8월 2300포인트, 연말 2500포인트까지 상승할 것이라며 주식비중 확대를 주문했던 국내 대다수 증권사들은 이제 지수 하단으로 1800, 1500, 1200까지 점점 낮춰 잡고 있다.
신한금융투자가 지난 8일 코스피 하단으로 1850을 제시한 것을 비롯해 비슷한 시기에 대우증권은 1880, 솔로몬투자증권은 1900을 코스피 지지선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코스피는 급락을 이어가면서 9일 장중 한때 1700선이 무너졌고, 12일에는 종가 기준으로 1800선 아래로 밀렸다.
상황이 점차 심각해지자 다른 증권사들은 한 단계 더 눈높이를 낮췄다. 삼성증권은 신동석 이코노미스트와 오현석 투자전략가가 공동작성한 23일자 보고서에서 “중립적 시나리오는 글로벌 경제가 소프트랜딩(soft landing)한다는 중립적 시나리오를 근거로 할 때 1840~2210포인트, 부정적 시나리오의 경우 1540~1840포인트 내에서 등락할 것”이라고 수정 전망했다.
류용석 현대증권 시장분석팀장은 22일자 보고서에서 “극단적인 시나리오라고 할 수 있는 글로벌 금융위기 재연 및 동반 경기침체 진입이 현실화될 경우 코스피의 잠정적인 마지노선은 1260포인트 전후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불과 며칠 사이 1000포인트 가까이 눈 높이를 낮춰야 하는 투자자들로서는 증권사 리서치의 ‘고무줄 증시전망’에 황당하기 그지 없다. 특히 폭락장에서 지수 전망치 하단이 끊임없이 낮아지면서 투자에 대한 불안감이 극대화되는 모습이다.
▶지수 전망 어떻게 만들기에=대다수 국내 증권사는 개별 기업들의 연간 실적을 전망하고, 이를 근거로 현재 주가 수준에 주가수익비율(PER)이나 주가순자산비율(PBR) 값을 추정해 지수를 산출한다. 실적이 10% 오르면 예상 지수도 10% 오르고, PER나 PBR를 10% 할증 적용하면 역시 지수도 그만큼 오를 것으로 전망하는 식이다.
증권사들은 8월 지수 전망이 터무니없이 빗나간 데 대해 “미국과 유럽 등 글로벌 경제의 갑작스런 변수를 예상하지 못했다”고 항변한다. 지수 전망을 하는 데 있어 매크로(거시 경제)에 기반한 탑다운(Top-Down) 방식이 아닌 개별 기업분석에 근거한 바텀업(Bottom-up) 방식에 의존했다는 방증이다.
기업 실적에 근거한 지수 전망은 외국인 투자비중이 낮았던 2000년 이전에는 어느 정도 유효했지만 외국인 비중이 30%를 넘어선 이후에는 한계가 불가피해졌다. 수출 비중이 높은 데다 외국인이 큰손으로 부상하면서 글로벌 증시와 국내 증시의 동조현상이 뚜렷해졌기 때문이다.
한 섹터 담당 연구원은 “현재 시장은 전형적인 매크로 장세다. 거시경제 이슈가 시장을 압박하는 상황에서 개별 기업의 모멘텀(상승동력)을 언급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증권사 리서치센터가 보다 뛰어난 예측 능력을 갖추려면 무엇보다 거시경제 분석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글로벌 거시경제가 국내 증시에 미치는 막대한 영향력에 비하면 국내 증권사에서 이를 전담하는 인력은 수적으로도 부족한 현실이다. 보통 이코노미스트로 불리는 거시경제 전문연구원은 대형 증권사에도 2~3명에 불과하며 중소형 증권사는 1명이 있거나 아예 없는 실정이다. 수출주가 많아 글로벌 경기에 따른 실적변동이 큰 국내 상장사 특성상 매크로에 대한 분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개별기업 실적전망과 지수전망이 잇따라 틀릴 수밖에 없다.
▶지수 전망 어디까지 믿을까=이제 투자자들의 고민은 신뢰가 떨어지는 증권사의 지수전망을 얼마나 믿어야 하느냐, 이를 근거로 투자 여부 등을 결정해도 되느냐다.
지수를 예상하는 것은 투자자의 주식 보유비중의 확대나 축소 판단의 근간으로서 중요하다. 특히 레버리지나 인버스 등 지수를 추종하는 인덱스펀드ㆍETF(상장지수펀드) 등 시장의 방향성 감지가 중요한 투자상품에 있어서는 지수 전망의 중요성은 매우 크다.
다만 최근 어긋난 전망에도 불구하고 투자자 입장에서 현실적으로 그나마 가장 신속하고 깊이 있는 투자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은 사실상 증권사 리서치 자료뿐이다. 따라서 리서치의 전망을 참고하되 지수가 상승 또는 하락한다고 해서 그대로 주식비중을 늘리거나 줄이는 행동, 레버리지 또는 인버스 상품에 ‘몰빵’ 투자하는 것은 유의해야 한다.
시장 방향을 가늠하기 위해서는 국내 기업실적에 영향을 미치는 미국과 유럽, 중국의 경기가 어떤지 그리고 국내 증시를 좌우하는 외국인들의 투자동향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국제금리 등 글로벌 유동성 환경이 어떤지를 반드시 따져봐야 한다.
또 단순히 대형 증권사라고 해서 맹신할 것이 아니라 증권사별로 과거 전망치와 실제 지수의 움직임을 비교해 지수 예측력이 높은 증권사의 리포트에 좀 더 관심을 가져보는 것도 방법이다.
본지(2011년 6월 29일자 19면 참조)가 올해 상반기 월별 지수 전망치와 실제 코스피 차이의 표준편차를 분석한 결과에서 한화증권, KTB투자증권, SK증권, 솔로몬투자증권, 대우증권 순으로 적중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윤지호 한화증권 투자분석팀장은 “최근 매크로의 불확실성 때문에 주가가 빠졌지만 이미 일정 부분 반영된 측면이 있어서 무너지기보다는 바닥에서 안정권을 찾을 것이다. 기업의 3분기 실적이 발표되는 9월 말~10월 초가 중요하다”고 내다봤다.
최재원 기자/ jwchoi@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