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검찰은 국가보안법 상 가장 강력한 반국가단체 결성 혐의로 ‘왕재산’ 조직 10여명을 재판에 넘겼다. 검찰은 이들이 북한 225국의 지령을 받아 서울·인천 지역을 중심으로 주요시설 폭파, 정치권 진출 등 공작활동을 해왔다고 밝혔다. 검찰 설명대로라면 70년대에나 있을 법한 시대착오적인 간첩집단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과연 이들이 실제 검찰의 발표 내용처럼 거대한 위협집단인지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대법원 판결에 따르면 반국가단체란 ‘폭력적인 방법으로 정부를 전복하고 국가변란을 직접적인 1차 목적으로 하는 단체’를 뜻한다. 검찰은 이들이 정치권에도 진출하려고 했으며 유사시 200여명을 동원해 인천 지역의 케이블 방송사와 행정기관을 접수하려 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피의자들이 한 결 같이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어 이들의 입을 통한 실체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압수물 분석과 정황을 종합할 때 실체를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검찰이 구속 또는 불구속 기소한 10명의 조직원으로 과연 이를 얼마나 실행에 옮길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또한 이들이 각종 집회·시위를 주도했다고 받아들이기엔 검찰이 근거로 제시한 ‘시위 현장에서 찍힌 사진’만으로는 부족해 보인다.
이들이 보고했다는 국내 정치 정세 보고의 수준도 의문이다. 검찰은 “일반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내용”이라고 밝혔지만 ‘국가보안법폐지 국민연대’는 평범한 내용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또한 이들이 입수해 올려 보냈다는 미군 야전교범은 전미과학자협회(FAS) 홈페이지에서 누구나 손쉽게 내려 받을 수 있고, 국내 위성사진집도 2005년 당시엔 15만원을 주면 살 수 있었다고 검찰이 밝혔다. 지금은 검색 사이트의 위성사진을 통해 누구나 구할 수 있는 이러한 정보가 얼마나 위협적인지 의문이다.
때문에 이들이 실제 북한과 접촉했다는 검찰의 수사 내용을 인정하더라도 자신들의 공을 과시하기 위해 일방적으로 허위 사실을 부풀린 것이라면 범죄 혐의 규명은 복잡해진다.
지난 2008년 불온서적을 팔았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상 찬양고무죄로 기소된 헌책방 주인에 대해 이듬해 법원은 1심에서 “검사가 제출한 증거를 종합하더라도 피고인의 행위로 국가의 존립 안정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할 만한 것은 없다”며 무죄 판결했다. 즉, 행위 자체가 아니라 얼마나 실질적인 위협이 있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러한 부담을 의식했는지 “피의자들이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어 수사에 큰 어려움이 있었고 향후 공판 과정도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혐의를 입증할 증거물이 많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기소에 이르게 된 구체적인 근거에 대해선 입을 다무는 모습에서 자칫 이 사건이 자칫 ‘용두사미’로 끝날 가능성도 엿보인다.
김우영 기자/kwy@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