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예식장 돌며 쉴틈없이 알바
그래도 등록금 마련엔 턱없이 부족
생활비 절약위해 친구들과 더부살이
장학금 못 받으면 차라리 군대라도…
한달 80여만원 모아야 다음학기 등록
돈 걱정없이 대학 4년 보내면 ‘축복’
한두 학기 휴학 필수 최대 6학기도
학문탐구는 옛말…대학은 ‘人骨塔’
전 세계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대학진학률 80%의 나라. 이‘ 이상한 나라’의 비정상적인 대학 체계를 논하기 앞서 당장 대학생들은 등록금 1000만원 시대를 살아야 하는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해 있다. 학문탐구라는 대학 본연의 역할은 이미 뒷전이다. 대학은‘ 취업학원’으로 전락한 지 오래. 심호흡 크게 한번 하고 과감히‘ 간판’에 초연해질 수 없는 것은 그래도 한국이
라는 나라에서 태어나 그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숙명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한두 학기 휴학은 필수과정이고 최대로 가능한 6학기 휴학도 이제 주변에서 찾아보기 어렵지 않다. 복학하려 해도 장학금을 받지 못하면 다시 휴학하고 학비에 생활비까지 마련해야 하는 대학생들의 모습이 바로 우리 옆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돈 걱정 없이 대학 4년을 보낼 수 있는 것만 해도‘ 은수저를 물고 태어난’ 축복. 생활비를 절약하기 위해 또래 친구들과 한방에서 같이 생활하고 파트타임 등 각종 아르바이트에 치이는 이들의 고군분투가 눈물겹다.
▶“하루 10시간 물류창고 알바…그래도 등록금이 모자라요”=임진기(가명ㆍ20ㆍA대 경제학과 2학년) 씨는 지난 봄학기에 휴학을 했다. 다음 학기 등록금을 마련 중인 임 씨는 안 해 본 일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3월부터 넉 달 동안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식당 홀서빙을 하고 식당일이 끝나면 바로 과외를 했다. 7월에는 아침 9시부터 저녁 7시까지 일주일가량 물류창고에서 일했다. 시급이 5500원이라고 해서 과외까지 중단하고 시작한 일이지만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어 오래 할 수 없었다.
비가 오지 않는 틈틈이 공사판 막노동을 하는 날도 있다. 이렇게 임 씨가 벌어들인 한 달 수입은 90여만원. 학관에서 주로 해결하는 식사와 교통비, 통신료를 제하면 한 달 35만원이 남는다. 그러나 등록금 330만원을 내려면 3월부터 매달 적어도 65만원을 모아야 했는데 35만원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당장 다음 학기 신청한 장학금을 못 받으면 또 휴학해야 할 형편이다. 임 씨는 “당장 군대에 갈까 생각도 했지만, 빠른 92년생이라 영장이 안 나와 내년에야 입대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학자금 대출, 군대에서도 초비상”=지난 2월 이모(21) 씨를 포함한 4명의 친구들이 PC방에 모였다. 이들이 지난달 입대한 정모(21) 씨의 주민등록등본과 통장 사본, 성적표, 가족관계도 등 서류 뭉치를 들고 PC 앞에 앉은 이유는 학자금을 대출받아 등록금을 대신 납부해달라는 부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정 씨가 받기로 돼 있는 장학금은 다음 학기 등록을 하지 않을 경우 자동으로 다른 학생에게 넘어가게 된다. 신병훈련기간과 등록금 납부시기가 겹치자 정 씨는 친구들에게 이 일을 부탁하고 입대했다.
대학 등록금과 생활비를 모두 스스로 벌어 쓰는 정 씨에게 몇십만원은 결코 작은 액수가 아니다. 정 씨가 미리 알려준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인터넷 학자금 대출 사이트에 접속해 대출신청을 했다. 돈이 계좌로 입금된 것을 확인하고 등록금을 납부하기 위한 양식의 빈칸을 메워갔다. 납부를 최종 확인한 이들은 친구에게 도움이 됐다는 뿌듯함에 더해 가슴 한켠이 아려오는 것을 느꼈다.
등록금 대출과 납부 내역을 정 씨의 어머니에게 보여드리자 어머니는 눈물을 글썽이셨다. 이 씨는 “등록금과 생활비로 힘든 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일”이라며 “서로 사정을 이해하니까 최대한 돕고 싶었다”고 말했다.
▶“내 직업은 알바생…졸업은 다가오는데”=졸업을 한 학기 앞둔 이수현(가명ㆍ25ㆍB대 중문과) 씨. 그는 대학에 입학한 이후 단 한 번도 아르바이트를 쉬어본 적이 없다. 1학년 때부터 지난겨울까지는 주말마다 예식장에서 예도 아르바이트를 했다. 아침 9시부터 저녁까지 주말 이틀을 모두 반납해 가며 일을 해서 번 돈은 매달 40만원 정도. 이 돈은 생활비와 학자금 대출 이자를 갚는 데 쓰였다. 지난 3월부터는 서울의 한 회사에서 안내 데스크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학교에서 진행하는 필리핀 단기 연수프로그램을 지원하기 위해 휴학까지 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 포기하고 대신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대학 입학 후 6학기 동안 2000여만원 정도의 학자금대출을 받았는데 상환 시기도 다가오고 대출 이자도 지불해야 해서다. 이 씨는 “부모님이 식당을 운영하시는데 장사가 잘 안 될때면 등록금이나 용돈 부담을 드리기 싫었다”고 말했다.
오전 8시에 출근해 저녁 6시까지 아르바이트를 하는 이 씨는 주 5일 근무에 150만원을 받는다. 세금을 빼고 나면 138만원 정도. 친동생, 학교 친구 2명과 함께 방 2개짜리 주택에서 자취를 하는데, 55만원인 월세는 친구들과 나눠서 지불하고 5만원씩 갹출해 각종 공과금과 식비를 해결한다. 이렇게 절약하더라도 이 씨의 한 달 평균 지출은 65만원이다. 이 씨는 “처음 자취나 하숙을 구할 땐 월 30만원 정도면 좋은 조건의 방을 구할 수 있었는데 이젠 자취, 하숙 모두 50만원 이상은 줘야 한다”며 “학생들이 살기에 점점 팍팍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대학생 박미진(21) 씨는 방학 때는 물론 학기 중에도 카페 아르바이트를 한다. 아르바이트로 버는 돈의 절반은 생활비로 쓰고, 절반은 모아서 등록금에 보탠다. 박 씨의 한 학기 등록금은 450만~500만원가량, 한 달 급여는 100만원 정도다.
▶“강의보다 알바 먼저…차라리 집이라도 서울이면”=충북 옥천에서 서울로 ‘유학’ 온 김민철(가명ㆍ28ㆍC대 물리학과 3학년) 씨는 서울 생활을 고시원에서 시작했다. 시각장애 1급인 아버지는 기초생활수급대상자로 고향에서 폐지를 주우며 어렵게 생활하고, 동생도 청주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어 사실상 ‘가장’ 노릇을 하고 있다.
편의점ㆍ마트 파트타임머 등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일반 아르바이트로는 학비 조달이 어려워 방학 중에는 과외에만 전념하고 있다. 지난달 김 씨의 한 달 수입은 87만원. 교통비, 학원비, 식비에 대체복무로 산업체에서 1일 2교대로 근무하면서 생긴 위장병으로 약값도 매달 정기적으로 나가고 있다.
그래서 지난 학기 한국장학재단에서 100만원의 대출을 받고, 교보생명에서도 학자금 대출을 받아 등록금을 조달했다. “방학 동안에는 하숙집에서 세 끼 식사를 해결하고 있지만, 개강하면 아침만 먹을 것 같다”는 김 씨는 한국농촌공사에서 일하고 싶어한다. 어려서부터 농촌에서 자랐고, 흙은 사람을 속이지 않고 노력하는 만큼 그 결실을 돌려주기 때문이라는 게 이유이다.
이태형ㆍ박수진ㆍ이자영ㆍ박병국 기자/th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