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여름 하염없이 퍼붓는 비를 보면서 유명한 재난영화 ‘투모로우’를 다시 봤다. 20세기 후반 ‘지구 온난화’라는 용어가 등장한 이래 우리는 점점 더 예측 불가능한 날씨를 경험하고 있다. 지난 겨울의 맹추위와 여름의 폭우, 빈번한 슈퍼태풍, 지진 등을 보면서 영화 ‘투모로우’나 ‘2012’ 같은 파국적 자연재해가 덮치는 것은 아닌지, 기우를 해보기도 한다.
그런데 지난 8월의 금융충격을 겪으며 어쩐지 경제환경도 날씨를 닮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2008년 리먼사태를 겪은 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런 일이 생기나. 미국의 디폴트 위기, 신용등급 강등, 뭐 이런 이야기들은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현상이다. 미국과 유럽에서 발생한 재정위기는 사태의 심각성을 보여줌은 물론이고, 쉽게 해결될 문제도 아닌 것으로 여겨진다. 2008년의 금융위기, 2011년의 재정위기, 다음은 또 뭐지?
1980년대 이후 지구 기후는 ‘불안정’과 ‘거칠어짐’이라는 단어로 요약할 수 있는 특징을 보이며 그 추세가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마찬가지로 21세기 들어 세계경제 역시 그 두 단어로 요약되는 현상들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북극의 빙하가 녹듯이 선진국의 재정이 고갈되고, 슈퍼 허리케인이 미국 대도시를 위협하듯 월가의 충격은 주기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지구온난화처럼 경제ㆍ금융 시스템이 근본적으로 불안정해졌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7월 폭우에 강남 한복판이 물에 잠기고 아파트에 산사태가 들이 닥쳤다. 도시의 배수나 방재 시스템이 기존의 규정대로 잘 시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재난을 막을 수 없었다. 100년에 한번 있는 홍수에 대비한 설계가, 기록을 넘어서는 폭우 앞에 무력화되고 만 것이다.
이것은 시스템의 토대가 흔들리고 불안정해질 때, 과거의 경험치를 가지고 만들어진 대응책들이 쓸모가 없어짐을 보여주는 것이다. 기후에 관한 것이 그렇다면 경제와 금융에 관한 것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금융과 투자의 철학, 패러다임, 원칙들은 거의 대부분 세계경제의 안정적 번영기에 만들어지고 검증을 거쳐 확립된 것들이다. 투자의 영역에서만 보아도 ‘장기투자’, ‘바텀업 어프로치’, ‘스탑로스’, 뭐 이런 것들이 있는데 근본적으로는 모두 경제의 안정적 번영기에 가장 효율적이고 적합한 원칙들이다. 투자회사들이 이러한 원칙에 따라 운용을 하는 것처럼, 금융투자 체계도 그에 맞게 제도화 되어있다.
만일 세계경제와 금융환경이 근본적인 불안정성의 시대로 접어들었다면, 우리는 서울의 하수관 지름을 다시 생각하듯이 이러한 것들도 향후 환경에서 적합한 것인지 다시 생각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장기안정성장 경제에 맞는 틀이 불안정성의 토대 위에 놓인 경제에도 맞는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혹자는 이와 같이 불안정한 경제하에서 투자는 위험하기 때문에 예금이나 국채같이 안전한 곳에 돈을 묻어두고 투자를 피하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은 두 가지 관점에서 문제가 있다. 금융위기와 재정위기로 인해 금리는 낮아지고 물가는 높아진다. 즉 예금이나 현금은 시간이 갈수록 그 가치가 훼손될 수 밖에 없다. 또한 기후변화에서 보듯이 지구온난화가 된다고 해서 겨울이 더 따뜻한 것은 아니다. 즉 금융환경이 불안정해질수록 국지적(시간적, 공간적, 섹터적)으로 버블이 형성될 가능성은 여전히, 아니 더욱 크게 존재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결국 새로운 환경하에서도 투자는 필요하며, 아니 더욱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될 것이다. 다만 좋은 주식이나 아파트를 사서 장기보유하면 무조건 수익을 얻는다는 과거 좋은 시절의 패러다임이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결국 우리는 새로운 투자 패러다임은 무엇인가 하는 고민을 진지하게 할 때가 되었다. 대체적인 생각하자면 아마도 몇 가지 방향들이 있지 않을까. 일례로 거시경제적 변화를 중시하는 리서치, 주기적인 위험관리와 롱(Long) 일변도, 장기투자 일변도 탈피, ‘플러스 알파’를 목표로 하는 투자, 투자 대상, 방법의 유연성 등이다.
아직 분명한 것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시대가 우리에게 그 부분을 고민해보라고, 이제는 ‘스마트’한 투자의 시대가 되고 있다고 속삭이고 있는 것 만은 분명해 보인다.
윤수영 키움자산운용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