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적 늦더위 불구 사용량 예측·정비 시스템 마비
봄·가을 집중된 발전기 정비…어제만 23개 가동 중단
“오후 2시부터 고갈돼가는 양수발전용 물을 보면서 피가 말랐다.”
사상 초유의 전국 대규모 정전이 도대체 물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이는 전기 생산의 특성을 알아야 쉽게 이해될 수 있다. 전력은 흘러가는 ‘물’과 같아서 아무리 많이 생산을 해놓아도 저장을 할 수가 없다. 결국 그때그때의 수요에 맞춰 필요한 만큼을 생산하고 모두 쓰는 게 가장 효율적이다. 특히 수요가 급변할 때 사용하는 방식이 양수발전(전날 물을 퍼올려 전기를 생산하는 방식)이다. 가스나 석탄과 같은 화력발전도 10시간 이전에 먼저 연료를 점화하기 시작해야 한다. 원자력의 경우는 한 번 연료를 장착하면 1년 이상 끄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어서 수급 상황에 기동력 있게 대처하기 어렵다.
15일 정부와 전력거래소는 계속되는 더위에 맞춰 준비해놓은 양수발전은 대략 350만㎾ 정도. 하지만 전기 사용량은 이날 오전 11시부터 급격하게 늘어나기 시작해 오후 1~2시쯤에는 이미 양수발전용 물이 떨어져 가고 있었다. 오후 3시쯤에는 예비 전력이 148만㎾까지 떨어졌다.
결국 15일의 상황은 늦더위로 인해 전력이 얼마나 필요할 것이며, 이에 맞춰 양수발전과 화력발전 등 전력 공급원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전기 수요 예측 실패에서 비롯된 셈이다.
전국적인 늦더위로 15일 최대 전력 수요는 6726만㎾에 달해 정부 예상치를 320만㎾가량 웃돌았다. 이는 통상 이맘때 수요보다는 높은 것이지만, 보름 전인 지난달 31일 기록한 올여름 전력 피크(7219만㎾)나 지난 1월 17일 기록한 사상 최대 전력 피크(7314만㎾)에는 훨씬 못 미치는 수치다.
결국 우리나라의 발전설비가 부족하다기보다는 전력이 얼마나 필요할 것인가에 대한 정확한 예측과 이에 맞춘 경제성 있는 공급 방안 마련에 실패했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또 정부의 전력 공급 운신의 폭을 좁혔던 것은 봄과 가을에 집중돼 있는 발전소들의 정비 기간이다. 지식경제부와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가을에 접어들면서 발전소들이 속속 계획 정비에 들어가 이날 현재 전국 23개의 발전소가 가동을 중단한 상태다. 이는 발전용량으로는 총 834만㎾ 규모로, 전국 전체 용량의 11%에 해당한다. 게다가 발전소 2기는 고장 상태였다.
통상 발전소들은 15~18개월마다 한 차례 가동을 중단하고 순차적으로 1개월가량의 계획 정비에 들어가는데, 전력 수요가 급증하는 여름과 겨울을 피해 봄과 가을에 정비가 집중된다. 원자력발전소인 영광 2호기의 경우 지난달 29일 연료 교체를 위한 계획 정비에 들어갔으며 울진 4호기는 지난 9일에, 2호기는 지난 14일에 가동을 중단하고 계획 정비에 들어간 상태다.
정부가 15일 내놓은 대책 역시 늘어나는 전력 수요에 따라 추가로 필요한 전력을 확보하는 데에 맞춰져 있다.
지경부 측은 “정비 중인 발전기 중 일부를 순차 가동하고 수요자원 시장을 개설하며, 430만㎾의 양수발전을 가동할 예정이어서 오늘 같은 수급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은 없다”고 자신했다.
전력거래소는 전날 저녁 ‘순환 정전(단전)’ 조치를 해제하면서 834만㎾가량의 계획 예방 정비 중인 발전용량 가운데 56만㎾를 복원하고 전력거래소가 60만㎾, 한전이 150만㎾를 추가 확보하도록 관련 조치를 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되면 전날에 비해 266만㎾의 예비 전력 여유를 갖게 돼 정전 사태를 되풀이하지 않을 것으로 정부는 보고 있다.
박지웅 기자/goahead@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