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의 노림수가 먹힌걸까. 영업정지 저축은행 발표 이후 첫 영업일인 19일 오전 10시 살생부에 이름을 올린 7개 저축은행들은 대체로 차분한 모습을 보였다. 올 초 부산저축은행 사태와 같이 예금자들이 대거 몰려와 항의하거나 문 닫힌 저축은행의 출입문을 훼손하는 등 과격한 행동은 자제했다. 만약에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배치된 경찰 병력도 경계 근무에만 충실했다.
영업정지된 한 저축은행 관계자는 "일부 예금자들이 문이 닫혀진 출입문에 붙은 안내문만 읽고 가는 수준"이라면서 "업무를 하지 않는 공휴일과 비슷한 분위기"라고 전했다. 제일저축은행은 별도로 설명회 장소를 마련해 영업점을 찾는 고객들을 응대하고 있다.
이번 영업정지 조치에 포함되지 않은 한 저축은행 대표는 "이날 오전 현재 예금자들이 별다른 동요를 하지 않으며 특별히 인출이 늘지는 않고 있다"면서 "상반기 학습효과 탓에 돈 찾을 고객들은 이미 인출한 상황으로 ‘대량 인출 사태(뱅크런)’는 재연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부산저축은행 사태로 한차례 홍역을 겪은 부산 시민들은 2차 영업정지 저축은행 소식에 큰 혼란을 빚고 있다. 전날 발표된 금융당국의 ‘퇴출 저축은행 목록’에 모회사인 토마토저축은행의 이름이 오르자 토마토2저축은행 영업점에도 예금자들의 내방은 물론 전화 문의가 빗발치고 있는 것. 토마토2저축은행 부산 부전동 지점에는 아침 일찍부터 몰려든 예금자들이 예금 인출을 시도하면서 사실상 은행 업무가 마비됐다. 토마토2저축은행은 부산에 본점을 두고 있고 선릉, 명동, 대구, 대전 등에 영업점을 두고 있다.
이날 오전 부전동 지점에만 예금자 700여명이 몰려들어 예금 인출을 시도했으며, 저축은행 측은 몰려든 예금자들에게 번호표를 나눠주며 상황을 설명하기에 바빴다. 토마토2저축은행 본점 박재필 팀장은 "언론에 보도된 토마토저축은행은 토마토2저축은행과 별개"라면서 "토마토2저축은행은 재무건전성이 확보돼 정상 영업을 하고 있으니 예금자들은 안심해도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예금자들의 불안이 극에 달하면서 토마토2저축은행이 뱅크런 사태에 직면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부산 연지동에 사는 이숙자(68세)씨는 "하도 부산저축은행 사태가 시끄러워 혹시나 하는 우려 때문에 밤잠을 설쳤다"면서 "예금은 5000만원 이하지만 불안해서 예금을 인출하려고 아침부터 은행을 찾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이날 오전 서울 명동에 위치한 토마토2저축은행을 방문해 2000만원을 예금하고 고객들과 긴급 간담회를 갖는 등 불안 여론을 차단하는데 주력했다.
앞서 토마토2저축은행은 전날 44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 계획을 발표했으며, 이번 증자로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은 6.26%에서 10.5%로 높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당국의 퇴출 저축은행 ‘기습 발표’에 뒤통수를 맞은 일부 예금자들은 금융당국을 맹비난했다. 영업정지된 저축은행 5000만원 이하 예금자인 최모씨(64세)는 "영업정지 저축은행이 하순에 발표되는 줄 알고 (예금을 찾을 수 있는 시간이) 1주일 정도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어제 뉴스를 보고 깜짝 놀랐다"면서 "부실 경영한 저축은행도 문제지만 거짓말하는 정부(금융당국)도 책임져야 하는 것 아니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예금보험공사는 저축은행 예금자들의 동요를 막기 위해 경찰청에 협조를 요청해놓은 상태로, 일부 영업점에는 이미 경찰 병력이 배치돼 돌발 사태에 대비했다.
<윤정희ㆍ최진성 기자/cgnh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