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장 선거에서 참패를 당한 한나라당은 27일 침묵속에 빠져들었다. 주요당직자와 의원들의 휴대전화는 전원이 모두 꺼져 있을 정도로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홍준표 원내대표의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박근혜 전 대표가 전면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이 봇물을 이뤘다.
박원순 야권단일 후보의 서울시장 승리에 기뻐하면서도 나머지 기초단체장에서 호남을 제외하곤 전패를 당한 민주당도 하루종일 어수선했다. 박 후보의 승리가 민주당의 승리라고 애써 자위해도 민주당이 ‘사실상’ 패배했으며 당의 혁신없인 향후 야권 통합에서 구심역할을 하기 어렵다는 데 동의하는 분위기다.
▶천막당사로 돌아가야 = 이날 한나라당의 화두는 ‘위기’와 ‘변화’였다. 과거 천막당사 이상의 결연한 각오로 바뀐 모습을 보여야만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변화’의 화살촉이 향한 방향은 미묘하게 엇갈렸다. 일단 홍 대표와 당 지도부에 대한 책임론이 앞선 모습이다. 원희룡 최고위원은 “현상유지를 전제로 대안이 없다는 이유로 시간을 벌려 하면 민심은 더 멀어진다”며 지도부 개편 필요성을 강조했다. 홍문표 최고위원도 “서울은 정책개발과 대응에 미진했던 혼란과 혼돈의 선거였다”며 선거 전략을 잘못 잡은 지도부의 책임을 지적했다.
이에 대해 당사자인 홍 대표는 “당 개혁과 수도권 대책에 주력하겠다”는 말로 사실상 거부 의사를 밝혔다. 일각의 대표 사퇴 및 비상대책위원회 구성론을 일축했다. 김정권 사무총장도 “9곳 중 8곳은 이긴거 아닌가”라며 홍 대표를 보호,내분 양상으로 치달을 가능성도 크다.
내곡동 사저 파문 등으로 민심 이반을 부채질한 청와대에 대한 비난도 쏟아졌다. 나경원 후보의 조직총괄본부장으로 선거를 이끌어왔던 김성태 의원은 “국정 운영의 방향을 전면적으로 틀어야 한다”며 청와대에 화살을 돌렸다.
반면 4년만에 선거 전면에 나섰던 박근혜 전 대표를 향한 목소리는 상대적으로 크지 않았다. 한 친박계 의원은 “누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냐”며 일축했고, 또 다른 친박계 의원도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박 전 대표 책임론과 분명한 선을 그었다. 오히려 이번 패배를 박 전 대표를 중심으로 더욱 뭉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김성태 의원은 “처음으로 수도권에서 하나된 모습을 제대로 보여줬다”며 “하나된 새로운 힘으로 국민곁에 다가가는 당이 되는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우리가 이긴 건 맞나?… 야권통합 부담 백배=민주당 내부는 박 후보의 서울시장 승리에 대한 기쁨과 함께 후보를 내지 못했다는 자괴감이 교차했다.
손학규 당 대표는 의원총회에서 “서울시장 선거 자체로 야권단일후보 승리를 자축하고 우리가 견인해낸 것에 대해 무한한 자부심 갖고 있지만 당 대표로서 당 후보를 내지 못했다는 자괴감과 당원ㆍ국민에 대한 송구스러움 면할 길 없다”고 말했다.
소속 의원들 역시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이 승리했다고 착각해선 안된다고 경계하는 분위기다. 김부겸 의원은 “세대와 지역에서 패배한 민주당은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며 “ 어떤 후보의 당선을 위해 선거운동을 도와주는 것은 선거 대행업체가 하는 일이지 정당의 일이 아니다”라고 일침을 놓았다.
박 후보의 당선에 일등 공신으로 추앙받을 순 있지만 박 후보의 당선이 민주당의 당선이라는 등식은 절대 성립할 수 없다는 의미다. 때문에 당내에선 벌써부터 박 후보의 입당 요구가 거세다. 이인영 최고위원은 “우선 민주당 내부에서 다른 진보정당이 함께할 수 있는 혁신ㆍ쇄신의 기운을 강화하고 정당 개혁을 가속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박 후보 측 대변인인 송호창 변호사는 “선거 시작 때부터 민주당 입당 뿐 아니라 다른 정당 입당 가능성까지 모두 열려있다고 했다”며 “시정 운영을 하면서 어떻게 하는 것이 현명할 지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며 유보적 태도를 나타냈다.
김 의원도 “선 당내 혁신, 후 야권 통합이 돼야 한다”며 “지도부가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은 이날 도시락으로 점심을 때우면서 선거 이후 당의 진로에 대해 전체 의원들이 백가쟁명식의 논쟁을 벌였다.
<최정호ㆍ서경원ㆍ양대근ㆍ손미정 기자@bigroot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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