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사나이가 산에서 죽는 것,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나 또한 히말라야 어느 골짜기에서 생의 마지막 순간을 맞을지….”
산악인 박영석(48) 대장은 지난 2003년 자신의 등반인생을 기록한 책 ‘끝없는 도전’에서 마치 자신의 운명을 예견한 듯 이 말을 남겼다.
그는 1993년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 무산소 등정을 시작으로 세계 최초로 ‘산악 그랜드슬램’(히말라야 14좌ㆍ7대륙 최고봉ㆍ3극점 모두 도달)을 달성해 기네스기록에 올랐다. 더 오를 곳이 없었지만 늘 도전에 목말라했다.
늙은 탐험가에게 주변에선 이젠 험한 길 대신 편안하게 살아보라는 충고도 많았지만 그는 늘 “산은 내게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며 웃었다. 박 대장이 산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80년 당시 동국대 마나술루 원정대가 등정에 성공하면서 “야, 저거다. 멋진 산악인이 돼보자”고 다짐했다.
그 뒤 박 대장이 산과 함께 한 30년 세월은 늘 ‘최고’, ‘최초’라는 타이틀이 붙었지만 결코 영광만 있지는 않았다. 1994년 에베레스트 남서벽을 등반하다가 난생 처음 목숨을 잃을 뻔했고,1995년에는 에베레스트에서 눈사태로 파묻혔다. 1997년 다울라기리에서는 빙하가 갈라진 틈에 빠져 운명의 갈림길에 서기도 했다.
박 대장은 늘 자신의 인생관을 “세상의 주인은 따로 없다. 도전하는 자가 세상의 주인이다”라고 표현하곤 했다. 특히 그는 정상에 오르기를 중시하는 ‘등정주의(登頂主義)’보다 과정에 무게를 두는 ‘등로주의(登路主義)’를 지향했다. 타이틀보다 도전을 아름다운 일로 여겼던 진정한 산 사나이였다. 2009년 5월 20일, 5번째 도전 만에 에베레스트 남서벽 신루트를 코리안 루트로 개척하는 쾌거를 이뤘지만 4명의 동료 대원과 셰르파 한 명이 목숨을 잃는 아픔도 감수해야 했다. 이번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남벽 등정길은 새로운 ‘코리안 루트’를 찾기 위한 도전이었다.
박 대장은 최근 김영도 전 대한산악연맹 회장의 미수(米壽) 기념문집에 기고한 글을 통해 “산악인에게 히말라야 8000m 신루트는 가장 영예로운 일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독히도 산을 사랑했고 늘 도전에 목말랐던 영원한 산 사나이, 박영석 대장은 결국 3일 영결식을 끝으로 동료들과 함께 안나푸르나의 품 속에서 영원한 전설로 남게 됐다.
심형준 기자/cerju@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