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이 환자를 치료하면서 라텍스 장갑을 이용할 경우 손을 ‘덜’ 씻는다는 충격적인 연구결과가 영국 의료진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연구에서 밝혀졌다.
영국 런던의대 쉘던 스톤 박사팀이 영국과 웨일즈에 있는 병원 15곳의 총 56개 병동에서 의사ㆍ환자 접촉 7000건 이상을 관찰한 결과 이 같은 결론이 도출됐다고 저널 ‘감염통제와 병원역학’(Infection Control and Hospital Epidemiology) 12월호에 발표했다. 스톤 박사는 “병원에서 라텍스 장갑을 낀 의료진을 보면 청결한 인상을 받지만 사실 그들의 손은 매우 지저분할 수 있다”고 밝혔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장갑 사용 여부와 관계없이 환자 처치 전후 손을 씻는 의사들의 비율은 기대에 못 미치는 47.7%로 집계됐다. 그러나 더욱 충격적인 것은 장갑을 사용한 의사들의 손 씻기 비율은 41%로 더 낮아진다는 것이었다. 환자를 치료할 때 장갑을 사용하는 의료진은 전체의 25%가량이었고 이중 60%가 환자 처치 전후 손을 씻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연구진은 라텍스 장갑을 통해 세균이 전염될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우려스러운 결과라고 언급했다. 라텍스 장갑에 묻어 있는 세균이 장갑을 벗는 행위를 통해 손으로 옮겨 붙으면서 환자에게 널리 옮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의료진은 체액 등 감염성이 높은 물질을 다룰 때 장갑을 사용하기 때문에 손을 씻지 않으면 더욱 위험할 수 있다.
스톤 박사는 “가장 병원균을 옮기기 쉬운 상황에서 의료진이 가장 손을 덜 씻는 셈”이라면서 “이번 연구가 감염에 취약한 노인환자가 많은 중환자실(ICU)에서 주로 이루어진 점을 감안할 때 더욱 충격적인 결과”라고 밝혔다. 연구진은 이번 결과가 영국에 국한된 문제는 아닐 것이라면서 병원위생의 기본인 손 씻기의 중요성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장갑을 사용할 때 의료진들이 손 씻기를 덜 하는 이유에 대해 스톤 박사는 “라텍스 장갑 안으로 병원균 침입이 불가능하다는 잘못된 인식 때문인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는 “장갑을 끼는 것은 병원균을 완전히 차단해주는 것이 아니라 감염율을 낮춰줄 뿐”이라면서 라텍스 장갑에 대한 이런 신화를 깨뜨릴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유지현 기자/prodigy@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