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 위기를 기회로 - ① 한·미FTA 추가대책 들여다보니
稅지원 포함 54조규모 투입
시설현대화 70%가량 증액
안정적 영농기반 구축위해
피해보전 발동요건도 완화
FTA 시대에 미국이나 유럽과 농업으로 경쟁하긴 불가능하다. 수십배에 달하는 국토에, 규모의 경제로 무장한 대국들과의 경쟁을 당해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많은 전문가들은 “전략적 가치를 감안해 우리 농업을 ‘살아남는 농업’, ‘작지만 강한 농업’으로 탈바꿈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 1월 정부가 내놓은 한ㆍ미FTA 보완대책 역시 이 부분에 방점이 찍혔다. 단순한 피해보전을 통해 농업의 볼륨을 유지하기보다는 체질을 개선할 수 있는 시설 현대화와 R&D 강화에 촛점을 맞췄다.
전체적으로 보면 재정지원액은 24조1000억원으로 2조원 이상 늘었다. 세제 지원규모 29조80000억원을 포함하면 지원액은 54조원에 육박한다. 올 한 해만 보면 2조1231억원이 FTA 대책 관련 사업에 쓰이는데 농식품부의 1년 예산의 7분의 1 규모다. 국회에서 요구한 거의 모든 안을 받아들였다.
추가대책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시설 현대화다. 지난해 2450억원이던 시설현대화 지원에 올해 4109억원이 직접 지원된다. 이차보전을 포함하면 67.7%가 늘어난 7002억원 규모다. 국가보조 없이 융자만 지원받을 경우도 융자금리를 현행 3%에서 1%로 인하해 농어업인의 자금 접근성을 높이고 금리부담을 경감했다.
시계를 넓혀보면 앞으로 10년간 시설 현대화사업에 총 10조4000억원이 쓰이게 된다. 절반 이상인 5조5000억원은 타격이 클 것으로 예상되는 축산분야에 쓰인다. 시설원예 분야에도 3조7300억원이, 수산과 과수 분야에도 각각 6400억원, 5600억원이 쓰인다.
우리의 시설수준은 영농선진국에 비해 10년이상 뒤져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가격이 아닌 품질로 승부할 수 있는 농수산물 생산을 위해서 시설 현대화는 가장 필요한 과제다. 농식품부 고위관계자는 “지원 폭을 확대하고 지원 방식을 변경해 기존 방식이라면 40년이상 걸릴 시설 현대화사업의 기간을 10년으로 앞당기게 된다”고 의미를 설명한다.
안정적 영농기반을 구축 대책도 많이 포함됐다.
피해보전 직불제의 발동요건이 기존의 85%에서 90%미만으로 완화했다. 2007년 80% 선이던 것이 두 차례의 추가대책을 거치면서 90%로 바뀌었다. 직접 비교는 어렵지만 미국이 지난 2002년과 2009년 두차례 도입했던 농어업분야 TTA(Trade Adjustment Assistance)의 경우 2002년에는 발동요건이 이전 5개년 평균가격의 80% 미만이었다. 2009년에는 이전 3개년 평균의 85% 미만이었다. 기타 국가들과 비교해 봐도 직불제 발동기준 90%는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평가된다.
이 밖에도 밭농업 직불제가 올해부터 도입되어 밀, 콩, 옥수수, 호밀 등 19개 품목에 대해 ha당 연간 40만원이 지급된다. 어업활동 장려차원에서 육지에서 8km이상 떨어진 어촌마을에는 가구당 49만원의 수산직불금도 지급된다.
29조80000억원에 달하는 세제 지원도 중요한 포인트다. 22개 사료원료 전부에 대해 할당관세가 적용되고(16개 품목은 무관세), 농어업용 면세유 공급을 향후 10년간 유지하기로 했다. 부가세 영세율도 10년간 유지된다. 일부에서는 기존에 있던 제도를 가져다 붙였다고 비판하기도 하지만, 일몰예정이었던 부분이 10년씩 연장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특히 WTO에서 소득보전 분야 등을 문제삼을 여지가 있음을 감안하면 세제 지원의 실질적 효과는 더 클 수 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농민들 입장에서는 당장 아쉬운 부분도 많을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정부입장에서는 사실상 재정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가용한 자원을 모두 투입했다”면서 “FTA가 위기일 수도 있겠지만 한국농업의 체질을 개선하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홍승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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