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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요광장 - 이장영> 유럽 금융위기와 유로화 포기 위험
재정불량국가 구제금융 불구
경제개혁 이행 여부 미지수
‘상환불능·유로존 포기 우려도
‘방화벽’ 구축·재정개혁 시급


최근 유럽에서 흥미로운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그리스가 구제금융자금을 언젠가는 상환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 독일에서는 26%밖에 되지 않는 데 비해 이탈리아와 스페인에서는 각각 77%, 57%라는 높은 수치가 나왔다.

남유럽보다 잘사는 북유럽 국가에서 훨씬 더 재정 불량국가에 대한 자금 지원에 인색해지고 있다는 얘기다. 이를 반영하듯 독일 재무장관은 최근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식으로는 그리스를 도울 수 없다”고 했다. 시장에서는 곧 상환자금 부족에 직면할 그리스가 디폴트를 선언하고 유로화를 포기할 위험(Convertibility Risk)이 높다고 평가하는 듯하다. 고실업률과 마이너스 성장에 허덕이고 있는 그리스가 임금 삭감, 연금 축소 등의 구제금융 조건을 과연 지켜나갈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한편 유럽중앙은행(ECB)의 드라기 총재가 역내 재정불량국가의 국채를 시장에서 직접 매입하기로 한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재정 부실로 국채금리가 상승할 경우 보유 국채의 손실 발생으로 은행이 동반 부실해지고, 궁극적으로 공적자금 투입에 따라 정부 부채가 증가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필요한 조치라고 발표했다.

ECB가 시장에 개입하려는 보다 직접적인 의도는 일부 국가의 높은 국채수익률에 반영된 유로존 포기 위험이 과도하다고 보고 이를 낮추려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스페인이 국채를 발행할 때 독일과 비교해 4~5% 더 높은 금리를 지급하고 있었는데, 이 중 3% 정도는 기초경제여건의 차이로는 설명이 안되는 부분으로 본다.

그렇다면 ECB가 무제한 시장개입을 선언한 후 일부 국가의 유로화 포기 위험은 현저히 낮아졌는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아니라고 본다.

첫째, ECB가 내세운 채권 매입의 전제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해당 국가는 유럽연합에 구제금융 지원을 요청해야 한다. 정부 차원의 구제금융을 신청할 경우 이들 국가에서 재정 긴축과 경제개혁 프로그램을 보다 결단력 있게 추진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당 국가 지도자들은 ECB 발표 이후 채권시장이 호전된 상태에서 구제금융 신청이 가져올 엄청난 정치적 타격과 ‘낙인 효과’를 염려해 신청을 미루거나 아예 하지 않을 공산이 크다.

둘째, 전면적 구제금융을 신청할 경우에도 금융위기에 대한 충분한 규모의 ‘방화벽’(Firewall)이 구축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유럽정상회의에서 새로운 구제금융기금인 유럽안정화기구(ESM)를 출범시키기로 했지만 그 가용 규모 5000억유로에 대해서는 우려가 크다. 이미 스페인 은행에 1000억유로를 지원키로 했다. 내년 말까지 만기도래하는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국채는 8000억유로가 넘는다. 턱없이 모자란다.

셋째, 향후 ECB의 채권 매입으로 이익을 보는 국가가 조건으로 부여받은 긴축정책과 경제개혁 약속을 지키지 않을 가능성이다. 드라기 ECB 총재가 IMF와 함께 경제개혁 프로그램의 이행 여부를 평가하자고 제안한 것도 실패 책임을 공유하기 위한 것이다.

이 경우 ECB는 독일 등 이사국의 압력 때문에 채권매입 프로그램을 중지할 수밖에 없는데, 이는 시장의 패닉현상과 해당 국가의 부도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어쨌든 ECB의 채권매입은 단기 유동성을 공급하는 장치이지, 지속 불가능한 부채 규모를 가진 국가의 ‘상환불능 위험(Solvency Risk)’을 줄여주지는 못한다. 지난주 ECB 채권매입 발표 후 스페인 국채금리가 0.4%밖에 하락하지 않은 것도 상환불능 위험이 상존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궁극적으로 유로존의 해체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는 중앙은행이 아니라 정부와 의회가 정부 부채를 줄이기 위한 근본적인 재정개혁을 단행해야 한다. 또한 유럽 차원의 공동 채무보증으로 발행되는 유로본드(Euro Bond) 등 실질적으로 ‘상환 불능 위험’을 공유하기 위한 조치가 필요한데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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