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02년 12월 2일 태어났어. 사람들은 대개 내가 가진 숫자 1~45 중 6개에다 칠을 하지. “자동요”라면서 그냥 기계가 해주는 대로 사는 사람도 있지만.
토요일 밤이 되면 사람들은 TV를 보면서 자신이 선택한 숫자의 공이 나오기를 기대하지. 그런데 1등 당첨 확률은 814만5060분의 1이야. 벼락 맞을 확률보다 낮으니까 숫자 6개를 전부 맞히기란 정말 정말 어렵지.
처음에 나는 인기가 별로 없었어. 발매 첫회 36억원어치밖에 팔리지 못했거든. 1등도 나오지 않았어. 그런데 7~9회 1등 당첨자가 나오지 않자 내 인기는 하늘을 찔렀지. 10회 판매금액은 2600억여원, 1등 총 당첨금은 835억9000여만원까지 치솟았어. 1등이 13명이나 됐지.
2003년 4월 드디어 ‘대박’이 터졌어. 19회 추첨에서 1등 당첨금액(407억여원)을 1명이 가져간 거야. 당첨자가 강원도 춘천에 근무하는 경찰관으로 알려지면서 춘천은 물론 전국이 들썩였지. 이후 사람들은 나를 마구 사들이더라고. 전국에 ‘로또 광풍’이 휘몰아쳤어.
카드대란이 일어나면서 신용불량자들이 거리에 넘쳐나던 때였는데, 예상을 뛰어넘는 매출을 기록하자 내가 사행성 조장의 온상으로 지목됐어. 사회 분위기를 더 어수선하게 만들었다는 거야. 나를 놓고 사람들이 서로 자기 것이라고 싸우고 속이고, 나 원 참.
있잖아, 빚에 시달린 나머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 주머니 속에 내가 수십 장이나 들어 있을 때도 있었어. 2003년 전체 복권 판매액 4조2331억원 중 3조8031억원이 나였어 나.
사정이 이렇게 되자 정부가 나설 수밖에. 이월 횟수를 5회에서 2회(2003년 2월)로 줄였고, 게임 가격도 2000원에서 1000원(2004년 8월)으로 낮췄어.
그래도 안 좋은 일만 일어나면 나를 들먹이더라고. 대박, 인생역전은 그나마 들을만해. 변별력이 없는 수능 ‘로또 수능’, 부동산 광풍 때 분양 ‘로또 분양’ 등등.
사람들은 잘 알아야 해. 나를 사는 이유가 대박이 아니라는 것을. 사실 복권은 사행심을 이용하긴 해. 너희도 알잖아. 그러면서 나만 욕하는 건 참을 수 없어. 하지만 어쩔 수 없지 뭐, 사람들이 만들어냈으니까.
복권은 즐거움이야, 그리고 나눔이야. 내가 태어나면서 조성한 기금액이 해마다 1조원에 달해. 지금까지 총 11조363억원이 모였어. 소외계층에, 문화사업에, 임대주택 건설에, 나는 사람들한테 다시 돌아가고 있어. 1등 당첨자도 2948명이나 돼.
나를 한번 사봐. 가장 많이 나온 번호는 40이야. 그렇다고 많이 사지는 말고. 그러면 1주일이 기쁠거야. 대박은 바라지 말고, 나눔의 기쁨을 누려봐. 행운은 열심히 사는 사람의 것이니까.
그리고, 우리나라 최초의 복권은 1947년 너희가 먹고살기 어려울 때 런던올림픽 선수단의 참가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발행한 ‘올림픽 후원권’이란 사실을 잊지 마.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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