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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홍준 “뻥이 심한 중국춘화, 괴기한 일본춘화에 비해 한국춘화는..”
“춘화(春畵)는 그 나라 정서가 고스란히 반영된 그림이라 나라마다 많이 다릅니다. 몽골 춘화는 말 타고 사랑을 나누는 것들이 많고, 인도 것은 사람의 몸을 어떻게나 이리저리 잘 꼬았는지 요가를 보는 듯합니다. 또 중국 춘화는 무술영화처럼 뻥이 좀 쎄죠. 소림사 스타일의 뻥이 에로틱아트에도 적용됐다고 할까요? 반면에 일본 춘화는 성기만 확대해 표현한 측면이 많고, 남자 여자 구분이 잘 안됩니다. 우리 춘화는 그에 비하면 서정적이죠. 진달래꽃이 만발한 곳이나 물이 한껏 오른 버드나무 옆에서 남녀가 사랑을 나눈다든지 그림에서 배경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크니까요. 요즘말로 ‘셋팅’(무대)이 기가 막힙니다. 유머가 유독 강조된 것도 다른 나라 춘화와 비교되는 점이고요”.

단원, 혜원의 전칭(傳稱, 누구의 것으로 전해지는 것) 춘화를 비롯해 한국의 춘화에 대해 미술평론가 유홍준 교수(명지대 미술사학과)가 4일 오후 열린 전시프리뷰에서 이같이 설명했다.


유 교수는 오는 15일 종로구 사간동 갤러리현대 본관 2층에서 일반에 공개되는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전칭 춘화에 대해 “세간에 돌아다니는 춘화는 터프하게 그린 게 대부분이다. 그러나 거칠 게 그린 것은 별 가치가 없다. 이들 그림처럼 잘 그려야 예술적 품격이 나온다. 이런 격조있는 오리지날 춘화를 감상할 수 있는 전시는 사실 흔치 않다”고 했다.

단원 전칭 ‘운우도첩(雲雨圖帖)’ 중 5점, 혜원 전칭 ‘건곤일회첩(乾坤一會帖)’ 중 10점의 춘화가 서울 사간동의 갤러리현대(대표 조정열)가 계사년 신년 기획으로 마련한 ‘옛사람의 삶과 풍류-조선시대 풍속화와 춘화’전을 통해 대중에 공개된다.


내달 24일까지 갤러리현대 본관과 두가헌갤러리에서 개최되는 이번 기획전은 조선시대 풍속화와 춘화를 아우른 전시다. 갤러리현대 본관 1층은 조선후기 화가들의 풍속화 10점과 일반에 최초로 공개되는 심전 안중식의 ‘평생도’(10폭 병풍)가 전시된다. 또 2층에는 단원 김홍도와 혜원 신윤복의 작품으로 전해 내려오는 춘화 15점이 내걸린다. 또 두가헌갤러리에서는 조선말 평민 출신 풍속화가로, 국내 보다는 해외 유수의 박물관에 작품이 다수 소장돼 있는 기산 김준근의 작품 중 새로 발굴된 풍속화 50점이 나온다.

조선시대 풍속화와 춘화를 통해 우리 선조들의 ‘낮과 밤’을 두루 살필 수 있는 이번 전시에서 가장 관심을 모으는 것은 아무래도 ‘19금(禁) 춘화’들이다. 단원과 혜원 전칭작인 이번 춘화는 19세이상 성인 관람객만 볼 수 있는데, 사진및 도판으로 전해지던 명품 춘화를 실물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화제다. 단원 그림으로 전해내려오는 ‘운우도첩’(19세기 전반)과 혜원의 전칭작인 ‘건곤일회첩’(1844년경)이 원화 화첩 그대로 대중에 공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유홍준 교수는 “이번에 전시되는 춘화첩은 노골적인 장면을 묘사하면서도 예술성을 잃지 않아 학계에서는 그들(단원, 혜원)의 것으로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며 “속설에 의하면 혜원은 남녀 애정을 적나라하게 그린 춘화 때문에 도화서에서 쫓겨난 것으로 전해진다. 그 때문인지 어떤 문인도 혜원의 작품에 제시를 쓰거나 화평을 남긴 게 없다“고 밝혔다. 또 “혜원의 전칭작인 ‘건곤일회첩’ 속 남녀 얼굴을 보면 발그랗게 상기된 모습이 일품이다. 이보다 더 잘 그릴 수 있겠는가. 혜원이 그렸거나, 혜원이 그리지 않았다면 그(혜원) 보다 더 잘 그리는 사람이 그렸을 것이다”고 했다.

한편 미술평론가 이태호 교수(명지대 미술사학과)는 “19세기 우리 춘화에는 신분사회에 대한 풍자와 농담이 짙게 깔려 있다. 춘화가 조선의 유교적 엄격주의를 깨는데 일조했던 예술 소재였음을 시사한다. 때로는 해학적이면서 낭만이 흐르고, 때론 점잖은 듯하며 가식 없는 에로티시즘의 감칠맛이 우리 춘화의 매력”이라고 평했다. 


이어 “이번에 전시되는 ‘운우도첩’의 춘화들은 가장 걸작이라 할 수 있다. 고운 조선종이에 그린 점에서도 품격이 느껴지며, 계곡과 들에서 벌이는 성희는 조선 춘화의 특징으로 꼽을 만하다. 땅기운을 흠씬 받으며 진행되는 성교이니 풍광과 인간이 하나 되는 자연치유법(힐링)이라 할만하다”고 밝혔다. 또 “‘운우도첩’과 ‘건곤일회첩’같은 춘화첩의 존재는 우리 문화의 귀물(貴物)이라 할 수 있다. 이웃 중국과 일본에서 발달한 춘화에 못지않은, 일당백이라 할 만하다”고 강조했다.

조선시대 풍속화와 춘화를 한데 모은 이번 전시 중 본관 1층에는 조선후기 생활상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공재 윤두서, 관아재 조영석, 긍재 김득신, 혜원 신윤복, 긍원 김양기 등 당대 최고 화가들의 대표적 풍속화가 소개된다. 이에따라 우리 옛 선조들의 풍류와 멋을 가늠해볼 수 있다. 특히 대중에게 최초로 공개되는 대작 ‘평생도’는 청전 이상범과 소정 변관식의 스승이기도 한 화원 출신 화가 심전 안중식이 조선말 석초(石樵)의 일생을 그린 작품이다. 


유홍준 교수는 “흔히 풍속화로 불리는 조선후기의 속화(俗畵)는 그 양이 많지 않다. 진경산수와 달리 전념한 화가의 수가 제한적이었기 때문”이라며 “그런 가운데 이번에 혜원의 ‘후원탄금도’와 긍재의 속화 등이 전시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특히 혜원의 풍속화 ‘후원탄금도’는 멋드러진 소나무, 괴석, 파초를 배경으로 기녀의 자태를 매력적으로 표현했다. 바짝 치켜올린 트레머리의 결이 곱고, 오른팔이 남자 쪽으로 몸을 기울이고 있는 몸동작이 여실히 느껴진다. 기녀를 바라보는 남자의 표정 또한 생동감있다”고 평했다. 이어 “소당 이재관의 ‘오창명상도’는 퇴기로 추정되는 여인을 그린 그림으로 무언가 수심에 찬 표정이 절묘하고, 스스럼없는 필치에 능숙한 붓놀림이 살아나 여인을 그린 속화 중 일품으로 꼽을 만하다”고 밝혔다.


한편 두가헌갤러리에 내걸리는 풍속화는 ‘수출 풍속화’의 주역이었던 기산 김준근의 풍속화 중에서도 세부적 표현과 다채로운 채색이 절정의 솜씨를 보여주는 전성기 것들이다. 기존에 알려진 1572점에 덧붙여 새롭게 발굴된 79점 중 50점을 선별해 공개하는 그림들로, 러시아 에르미타주와 미국 보스톤뮤지엄 등 외국 유명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기산의 풍속화를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다

갤러리현대는 전시에 맞춰 춘화 화첩을 제작 판매한다. 또 오는 23일 오후 2시에는 유홍준 교수가 ‘옛사람들의 삶과 풍류’를, 2월 13일 오후 2시에는 이태호 교수가 ‘조선춘화의 에로티시즘’에 대해 강의(선착순 150명 限)한다. 전시관람료 일반(대학생 포함) 5000원, 학생(만 19세 미만, 초중고등학생 포함) 3000원. 02)2287-3591

이영란 선임기자/yrlee@heraldcorp.com, 사진=김명섭 기자/mirs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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