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전 서울대 교수가 4월 국회의원 선거 출마를 선언하자 여야 정치권은 모두 ‘잘된 결정’,‘환영한다’며 안 전 교수의 정치 재개에 긍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정부조직개편안 처리 지연으로 국정 파행 상태가 지속되는 현 상황에서 기성 정치권의 ‘틈새’를 노리는 안 전 교수의 재등장은 여야 정치권에 모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김재원 새누리당 의원은 4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 안 전 교수의 출마결정에 대해 “정치권에 힘을 불어 넣는 잘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존의 꽉 막혀있는 여야 간 정치적 행태를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새누리당은 지난 3일 안 전 교수의 출마와 관련 ‘4일에 밝히겠다’고 말했지만 이날 오전 열린 최고위 회의에서 안 전 교수의 출마와 관련한 언급은 없었다. 사실상 김 의원의 발언으로 새누리당의 안 전 교수 출마에 대한 평가가 대신된 것이다.
새누리당이 이처럼 안 전 교수의 출마 선언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지키는 것은 당장 야권의 ‘집안싸움’이 될 것이 뻔한데 자당까지 나설 이유가 없다고 보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또 안 전 교수를 정치권으로 불러낸 ‘안철수 현상’의 근간이 곧 기성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현재의 정치 난맥상이 결국 안 전 교수의 정치재개에 ‘멍석’을 깔아준 것 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정부조직개편안 처리와 관련,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 리더십 부재’ 비판에 직면한 청와대도 ‘무관심’ 대응이다. 이날 오전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내정자가 사퇴를 하고, 취임 8일만에 대국민 담화까지 하게 된 상황은 정치권 일반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을 키우는 계기가 되고, 결국 기성정치인들의 입지를 더욱 좁히는 계기가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실제로 정부조직개편안 처리가 국회에서 난항을 보이던 지난달 22일 한국갤럽의 정기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박 대통령의 직무 수행에 대한 평가에 “잘하고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44%였다. 일주일 전 실시한 여론조사보다 5% 포인트 떨어진 것이다.
민주통합당은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지난 2일 실시해 4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안 전 교수 신당을 창당할 경우 정당 지지율을 보면 새누리당 40.1%, 안철수 신당 29.4%, 민주통합당 11.6% 순으로 나타났다. 무응답은 16.6%였다. 안 전 교수가 4월 선거에 출마하고, 이후 신당을 만들 경우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것이 민주당임이 명백한 것이다.
문재인 민주당 전 대선후보는 안 전 교수의 출마 선언 직후 “환영하고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반면 민주당은 ‘대국민 약속을 지키려는 것’이라는 건조한 한줄짜리 논평만을 냈다. 대선 패배와 관련 ‘안철수 책임론’이 당내 주류측에서 공감대를 얻어가고 있는 분위기가 반영된 논평으로 해석된다.
민주당 지도부의 안 전 교수에 대한 ‘견제구’는 대선 패배 이후 계속돼 왔다. 문희상 비대위원장은 최근 안철수 신당론이 제기되자 “안 전 후보에게 신당을 만들자고 하는 것은 악마의 유혹”이라고 말했고, 민주당의 분당 가능성이 나왔을 때에는 ‘의원 빼가기’에 대한 경고 메시지를 안 전 교수 측에 던지기도 했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에게 안 전 교수 출마가 던지는 충격이 중장기적인 것이라면 진보정의당에겐 ‘돌직구’에 해당한다. 노회찬 전 의원의 지역구에 안 전 교수가 출마키로 하면서 ‘지역구 뺏기’라는 비난 발언들이 쏟아졌다. 천호선 진보정의당 최고위원은 이날 오전 최고위 회의에서 “정치를 개혁하겠다는 유력 대통령 후보였던 사람이 서로를 배려해야 한다는 개념을 전혀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이 확인됐다”고 비난했다. 송재영 최고위원은 “일방적인 선언이었다고 판단된다. 그냥 죽으라는 거냐”고 지판했다. 진보신당은 논평에서 ““안 전 후보의 출마는 삼성이 동네빵집을 내겠다는 꼴”이라고 비난했다.홍석희기자 hong@heraldcorp.com